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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해외 이모저모

[일본어 탐구생활] 22년 후의 고백 (22年目の告白, 私が殺人犯です)

by 앰코인스토리.. 2024. 8. 28.

어린 시절 가장 부러워했던 부모님 직업이라고 하면 ‘슈퍼 사장님’이거나 ‘만화방 사장님’이거나 ‘떡볶이집 사장님’을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필자는 그 시절 무려 만화방 사장님이었던 아버지 덕에 모두의 부러움 속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유년 시절을 보낸 기억이 나네요.

 

90년대 말, 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석진 만화방(필자 남매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름)을 비롯해 전국의 만화방에서는 큰 변화를 맞이했는데요, 무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었습니다.

 

추억의 석진 만화방에서도 「스람던크」와 「오렌지 보이」라는 해적판 대신 「슬램덩크」와 「꽃보다 남자」라는 정식 발매본이 유입되기 시작했지요. 문화적 국경이 사라진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기점으로 무수히 많은 일본 영화들이 한국에서 개봉했는데요, 당시의 화제작이라면 지금도 “오겡끼데스까?”로 회자되는 <러브레터(ラブレター)>와 <철도원> 정도가 있겠네요.

 

사진출처 : 다음

두 영화 모두 섬세하고 아련한 일본 특유의 감성이 특징이지만, 사실 필자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필자가 인상깊게 본 영화는 바로 그 <배틀로얄>이었으니까요. <배틀로얄>은 2000년 이후 개봉한 일본 영화 중 가장 세계적인 파급력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2024년인 지금과 2000년이었던 당시에도 충격적이었던 독특한 세계관 덕에 타임지에서 선정한 21세기에 나온 화제작 100선에 선정될 정도로 당시 큰 화제를 불러 모았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후지와라 타츠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데스노트>라는 작품으로 한국의 영화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기도 했지요.

 

사진출처 : 다음

배우 후지와라 타츠야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굉장히 재미있는데요, 무려 만화 원작의 영화 작품이 14편이나 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연극 배우 출신인만큼 연기력이 훌륭하다는 호평이 주류이지만, 허스키하고 내리까는 목소리 탓에 소리지르는 연기가 작위적이라는 악평도 적지만은 않습니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연기 스타일은 아니지만, 일본 특유의 과장된 연기를 워낙 선호하지 않는 터라 오히려 후지와라 타츠야의 연기가 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후지와라 타츠야는 한국과의 인연도 꽤 있는 편입니다.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고, <올드보이>에서의 최민식 연기에 큰 감명을 받아 다른 영화에서 폭탄머리 캐릭터를 통해 오마주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한국 영화를 리메이크한 일본 영화에도 자주 출연했습니다. <초능력자>를 리메이크한 <몬스터즈>와, 오늘 소개할 <내가 살인범이다>의 리메이크판인 <22년 후의 고백(22年目の告白, 私が殺人犯です)>이 대표적입니다.

 

사진출처 : 다음

한국판 <내가 살인범이다>에서의 사건들은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들이라 피해자들이 전부 여성들이었지만, 일본판 <22년 후의 고백>에서의 설정은 조금 다릅니다. 피해자들 속에는 남성들도 포함되어 있고 범행의 순간을 가족 중 한 사람에게 직접 보여주며 트라우마를 안긴다는 설정이 추가로 사용되었습니다.

 

일본 관객들의 입맛에 맞게 각색되며 작품성 인정과 함께 흥행까지도 성공한 영화, <22년 후의 고백>의 작중 대사를 가져와 보았습니다.

 

初めまして、私が殺人犯です。

하지메마시떼, 와따시가 사쯔진한데스.

처음 뵙겠습니다, 제가 살인범입니다.

 

22年前お前が捕まえられなかった犯人だ。

니쥬니넨마에 오마에가 츠카마에라레나깟따 한닌다.

22년 전에 네가 잡지 못했던 범인이다.

 

山形先生、22年前、先生の目の前で奥様を殺したのは私です。

야마가타센세, 니쥬니넨마에, 센세노 메노 마에데 오쿠사마오 코로시따노와 와타시데스.

야마가타 선생님, 22년 전에 선생님의 눈 앞에서 사모님을 죽인 것은 저입니다.

 

誠に、誠に申し訳ありませんでした。

마코토니, 마코노니 모우시와케아리마셍데시따.

진심으로,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牧村刑事?牧村刑事じゃないですか。

마키무라케이지? 마키무라케이지쟈 나이데스까.

마키무라 형사님? 마키무라 형사님 아니십니까.

 

大変ご迷惑をおかけしました。

타이헨 고메이와꾸오 오카케시마시따.

대단히 폐를 끼쳤습니다.

 

お元気でしたか。

오겡끼데시따까.

잘 지내셨습니까.

 

貴方はドンくさいから5人も死んだんだよ。

아나따와 돈쿠사이까라 고닌모 신단다요.

당신은 덜 떨어졌으니까 다섯 명이나 죽은 거야.

 

誠 (마코토) : 진심, 진실, 사실

迷惑 (메이와꾸) : 폐, 귀찮음, 성가심, 괴로움

刑事 (케이지) : 형사

ドンくさい (돈쿠사이) : 느려 빠지다, 둔하고 굼뜨다, 얼빠지다, 얼간이다, 덜 떨어지다

奥様 (오쿠사마) : 남의 아내의 높임말. 부인, 사모님

殺人犯 (사츠진한) : 살인범

犯人 (한닌) : 범인, 범죄자

殺す (코로스) : 죽이다, 목숨을 끊다

 

9월이 된 지금도 폭염이 기승입니다. 절기상 처서를 넘긴 시기임에도 오싹한 서스펜스와 스릴러물이 생각나는 것은 도파민 중독 때문이 아니라 아직도 눈치 없이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 무더위 탓이겠지요! 극찬의 연속인 페데 알바레즈 감독의 <에일리언 로물루스>를 이제 와 보러 가기에는 조금 늦은 감이 있고, 이번 주말에는 집에서 편한 차림으로 추억 속 영화인 <링>이라도 복습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