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간밤에 내린 눈은 꽁꽁 얼어 있다. 처마 밑 고드름은 팔뚝만큼 자라 있고, 문틈으로는 밀려드는 황소 바람은 뺨에 닿는 것만으로도 온몸을 얼게 만들 정도다. 따뜻한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다면 도저히 박차고 나갈 수 없을 정도다. 온도계의 수은주는 위로 오르는 게 힘겨울 정도다.
“오늘 점심은 뭐 먹어야 하나?” 엄마의 말에 이불 속에 숨어 있었던 얼굴만 살짝 드러내고 고민했다. 엄마도 고민을 하시는지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이윽고 불현듯 생각난 게 있는지 이불을 박차고 몸을 일으켜 세우셨다. 호기심에 어린 눈으로 엄마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보았다. “코다리 사 놓은 게 있는데.”
코다리! 명태를 말린 생선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가지로 불리는 생선이 흔치 않은데, 명태는 참 유달리 이름이 많다. 그만큼 겨울에는 명태를 많이 먹었다는 것이 아닐까. 생으로 생태찌개, 얼린 놈으로 만드는 동태찌개, 겨울 찬바람으로 말린 황태찜, 겨울철 술안주인 노가리, 그리고 말린 듯 안 말린 듯 회색분자 코다리까지, 무궁무진 다양한 변신을 하며 서민과 겨울을 함께 하는 생선이다.
그 중에서도 엄마는 코다리를 유난히 좋아하셨던 것 같다. 동태찌개가 먹고 싶어 동태를 사다 달라고 하면 코다리 한 줄을 사 오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집에서 좀 더 말려 보겠다며 “잘라 드릴까요?”하는 상인의 말에 “그냥 주세요!”라고 답하곤 하셨다. 겨울이라 파리떼가 달려들 염려도 없고 벌레 생길 염려 없어서 마당에 있는 빨랫줄에 코다리를 매달곤 하셨다.
하루이틀 찬바람을 쏘이고 나면 코다리 조림은 더 쫀득쫀득해서 식감이 최고였다. 명태라는 놈은 잔가시가 많지 않은 탓에 큰 가시를 걷어내고 나면 먹기가 참 좋았다. 잘 배인 양념이 하얀 속살 사이사이에 스며들고 나면 한번씩 오물거릴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어쩌면 이런 식감이 좋아서 엄마는 코다리를 더 좋아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저녁 다 되었다, 얼른 나와!” 엄마의 말에 이불 밖으로 나왔다. 드디어 엄마의 야심작이 식탁 중앙으로 옮겨졌다. 뚜껑을 열지 않았는데도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10년 전, 20년 전에도 맡았던 그대로 느껴진다. 코다리가 제대로 된 모양이다. 뚜껑을 열자마자 펼쳐진 코다리 조림의 비주얼은 화려했다. 세상은 하루하루 발전하고 늘 혁신해야 한다는 말이 엄마의 요리 속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빨간 고추가 식감을 더욱 자극한다. “오늘은 더 화려합니다.” 말에 엄마는 엷은 미소로 화답한다.
“뜨거우니 천천히 드시오.” 엄마가 재빠르게 냄비로 향하는 나의 젓가락에 속도 조절을 요구한다. 제일 통통한 놈을 골라 엄마 밥 위에 얹어 놓고는 어느 놈이 나을까 쓱 훑어본다. 한 점 골라본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이용해 속살을 들여다본다. 탄성이 나올 지경이다. 와인은 냄새를 음미하고 나서 맛을 본다고 했던가. 맛있는 음식을 눈으로 한번, 맛으로 한번 더 즐기면 두 배의 기쁨으로 다가올 것만 같았다.
매콤한 양념이 쫀득한 코다리의 속살과 잘 조화를 이룬 듯싶다. 여러 번 씹을수록 고소함이 진하게 배어 나온다. 연한 생선 살을 단숨에 먹는 것과 또다른 행복이 느껴진다.
또 다른 저녁, 베란다에 코다리 몇 마리가 꾸덕꾸덕 말라가고 있다. 엄마가 시장에 다녀오신 모양이다. 올겨울은 코다리가 저녁 밥상에 자주 오를 것 같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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