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었던 사과가 어느새 금값이 되면서 멀리한 지도 오래다. 수입품인 오렌지와 바나나로 대체했다가 요사이는 맛이 든 참외를 먹게 되어 사과에 대한 아쉬움을 다소나마 덜게 되어 다행이다. 가까이 있는 딸네 집에는 손자의 재롱이 보고 싶어 매달 두 번씩은 다녀온다.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를 보기 위해서는 오후 느지막하게 가는 게 정석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는 게 그리도 좋은지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면서 이 방 저 방을 뛰어다니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식사를 하고 나서 과일을 깎아내면 기다렸다는 듯 포크로 찍어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순으로 주고 나서 자기 입으로 가져가는 것도 우리를 감동시키는 행동 중의 일부다. 그러던 것이 망고를 맛보고부터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망고와 오렌지를 쟁반에 가지고 나오니 “할아버지, 할머니, 오렌지가 엄청나게 맛있으니 많이 드세요.”한다.
“너는 무얼 먹지?”하면 양손을 깍지 끼고 망고를 덮으면서 “오렌지는 맛이 없어. 망고는 다 내 거야. 내가 다 먹을 거야.” 이런다. 딸이 “저기에 많이 있으니 같이 먹어야지.”하면 “딱딱한 것은 먹어도 돼.”한다. 알고 보니 씨가 있는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혈당을 조절해야 하는 처지라 당이 많은 과일은 멀리하는 편이지만, 깜찍한 배신에 얼떨떨하다.
20여 년 전인가? 우리 4형제 여덟 명이 캄보디아 여행을 갔을 때 휴식 시간마다 가이드가 망고를 서비스로 내놓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골의 집집마다 감나무가 있었듯 그곳도 망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밤 중에 호텔 근처 가게에 갔더니, 1달러에 망고 일곱 개를 주었던 기억도 새롭다.
망고를 좋아하는 손자를 생각해 5킬로그램을 보냈다. 대량으로 수입해 국내에서 파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항공편으로 태국에서 직구로 오는데도 4일이면 충분했다. 가격은 본국에 비해 다섯 배 정도지만, 작년과 비교하면 반값으로 살 수 있으니 이 역시 사과나 배 대체용으로 손색이 없다. 망고를 받았다면서 딸이 손자에게 “할아버지께서 열 여섯 개를 보내셨는데 몇 개를 드릴까?”하니 “할아버지! 일곱 개 드릴게요.”한다. 말뿐인 줄 알면서도 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 녀석이 욕심쟁인가? 아니, 우리에겐 여전히 귀염둥이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서울)
'Community >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토에세이] 자연의 신비, 비움과 채움 (0) | 2024.08.20 |
---|---|
[포토에세이] 청포대 낙조 (0) | 2024.08.13 |
[에피소드] 도심 속 피서 (0) | 2024.08.06 |
[포토에세이] 명옥헌 원림 (0) | 2024.08.01 |
[에피소드] 두부 (0) | 2024.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