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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도심 속 피서

by 앰코인스토리.. 2024. 8. 6.

사진출처 : 크라우드픽

올여름은 유난히 더운데다 열대야가 극성을 부린다. 잠자리에 들 때는 거실에 놓인 에어컨이 방을 커버하지 못하기에 선풍기를 두 시간 정도 켜 놓으면 그런대로 잠들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은 아니다. 밤 10시를 넘겨도 32도에서 33도니 이 방 저 방으로 옮겨 다니며 잠자기에 좋다는 것을 먹기도 하고 운동도 해보지만 어림도 없다. 그렇다고 피서를 갈 데도 마땅치 않아 난망하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아들네를 오가는 아내가 “그 아파트는 대단지라서 없는 부대 시설이 없어. 찜질방과 수영장도 있으니 피서를 그곳으로 갑시다.” 마침 아들 내외가 며칠 간 지방을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손자손녀만 있다. 딸에게 연락해 어린이집 방학 중인 손자와 동참하도록 했다. 10레인인 수영장은 길지도 좁지도 않고 깊이도 적당해서 남녀노소 모두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한쪽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수영장도 마련해 놓았는데 물이 손자의 배꼽을 오르내린다. 50개월로 들어선 손자는 두 번째 만나는 수영장을 보기만 해도 흥분되나 보다. 겨드랑이에 비닐 튜브를 두르고 겁도 없이 뛰어든다. 이미 두 명의 또래도 놀고 있어 더욱 신이 났다. 물장구를 치고 서로에게 물을 퍼부으면서 소리까지 지르며 노는 모습에 보는 이도 즐겁다. 한 시간이면 될 줄 알았는데 두 시간이 지나도 나오질 않아 여러 가지 당근을 제시해 데리고 나왔다. 거실에는 학원에 갔던 형과 누나가 와 있었다.

 

180이 넘는 중학생 형은 여전히 겁나는 상대고, 반면 누나하고는 죽이 척척 맞는다. “누나, 숫자 놀이할까?” 3살도 채 되지 않아 한글과 숫자는 물론 구구단도 7단까지 외운 녀석이라 우리 부부와 딸 가족은 또래보다는 많이 앞서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더하기와 빼기에 능통하다.

“5 더하기 7은?” “12.” 

“35 더하기 7은?” 35, 36~42야.” 

“56에서 6을 빼면?” 56, 55~50이잖아!”

한 자리 수는 단숨에 답하지만, 두 자리 숫자는 속으로나 손가락으로 세는 게 아니라 하나씩 더하거나 빼는 게 특이하다. 내가 “400 더하기 200은?”하니 “그거야 쉽지. 600.” 틀리기도 해야 하는데 묻는 대로 다 맞추니 재미가 반감한다. 손녀는 “30개월이 넘은 이종사촌은 숫자도 모르는데.”한다. 거실과 방까지 에어컨이 빵빵하고 먹을거리도 갖춘 새 아파트에서 손자손녀의 재롱도 구경하며 즐긴 2 박3일의 피서였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