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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약과

by 앰코인스토리.. 2024. 4. 30.

사진출처 : freepic.com

전통과자를 만드는 가게를 지날 때면 잠시 머뭇거리게 되곤 한다. 수많은 종류의 과자들이 진열되어 있지만, 유독 눈길이 가는 녀석이 있기 때문이다. 약과다. 말랑말랑 쫀득쫀득하면서도 달콤하고 부드러워 입 안에 들어가면 닿는 감촉 또한 즐겁다. 약과를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알 수는 없다. 학교 옆 문방구에 들렀다가 우연히 마주쳐서 호기심에 산 것이 계기일지 모른다. 아니면, 집으로 가는 길에 친구 녀석이 호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약과를 꺼내다 혼자 먹기가 멋쩍어 반을 갈라 준 것이 약과와의 첫 만남인지도 모른다.

 

뭐가 되었든 중요하지는 않다. 약과를 알게 되면서 약과를 즐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같은 가격에 부피가 큰 봉지에 담긴 과자와 약과를 선택하는 순간이 오면 약과를 짚곤 했다. 크기와 중량 차이로 후회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약과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던 당시로서는 주저함은 오히려 사치로 생각되었다. 약과는 낱개로 팔기도 했으며 10개를 모아 투명 케이스에 담겨 팔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모양과 모습이 똑같다. 그게 어쩌면 약과의 사랑을 지속하게 만드는 비결인지도 모르겠다. 약과 1개마다 비닐 포장을 하는 이유는 약과를 만드는 재료 때문이라고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전에는 맛있다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먹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방구 주인 아주머니 얘기에 약과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약과는 밀가루와 기름, 그리고 꿀을 가지고 만들고 틀에 찍고 기름에 튀긴다고 자세하게 가르쳐 주셨다. 약과를 좋아하는 나와 자주 얼굴을 보게 되다 보니 약과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해주고 싶으셨던 모양이었다. 그 비밀을 알고 나서는 다소 허탈하기도 했다. 다 만들어진 약과를 볼 때마다 신비롭고 경외로움이 느껴졌다면 그 안을 들여다보니 재료의 소소함에 약간의 실망감이 든 것이었다. 언젠가 누군가가 그랬다. 아름다운 추억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야지 그 안을 파헤치다 보면 뜻하지 않는 허탈감을 맛볼 수도 있다고.

 

갈색 빛깔에 같은 꽃 문양으로 한결같은 동일성과 동질성이 다양성과는 충돌을 빚을 수 있지만, 같은 맛과 빛깔이 그려내는 비슷함은 어떤 것을 선택해도 차이가 없다는 위안을 주곤 한다. “사과 10개! 마음대로 골라 가세요!” 점원의 목소리는 바구니를 들고 사과 하나하나를 요리 보고 저리 봐야 하는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사과는 ‘이런 류의 사과를 고르면 좋습니다’라는 기준을 제시하기는 하지만 막상 여러 사람들과 뒤엉켜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1~5까지의 정형화된 원칙은 싹 무너지고 만다. 서둘러 들어서 색깔이면 색깔, 모양이면 모양으로 단순화시켜 담아야 하는 상황이 오고 말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약과는 이것저것 재보는 수고를 덜 수 있는 것이다. 왠만한 경조사에 빠지지 않는 약과를 보면 옛날 사람도 꽤 약과에 대한 애정이 컸을 것이리라. 기름에 튀겼다는 약과를 알고부터는 맛있다고 여러 개를 한꺼번에 먹는 버릇은 사라졌다. 그리고 한결 같은 모양에 식상할 때면 네모난 것도 찾아보고 작은 크기의 미니 약과를 고르기도 한다. 모양과 크기, 그리고 색깔에 변화를 준다고 해도 약과의 맛은 변하지 않는다.

 

입 안이 궁금해지면 비닐 봉지를 뜯어 손가락으로 비닐 봉지를 잡고 다른 한손으로 조금씩 잘라먹는 재미도 제법 즐겁다. 입 안에 들어가면 쫀득한 약과가 짧게 씹히는 느낌도 좋다. 달달함이 한동안 유지되면 기분은 저절로 좋아진다. 언제나 좋은 간식으로 함께하고 있는 약과가 생활의 활력소가 될 수 있도록, 퇴근길에 전통 과자점에서는 잠시 발길을 멈춰야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