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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문화로 배우다

[추천책읽기 : 책VS책] 과학이 이렇게 다정할 수 있구나

by 에디터's 2022. 3. 22.

과학!
과학이 이렇게 다정할 수 있구나

특정한 학문을 이미지로 나타낼 수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먼저, 문학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색이 약간 바랬지만 여전히 우아한 트렌치코트를 걸친 멋쟁이 신사가 떠올라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들고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 속에서 시집을 한 권 꺼내어 들 것 같지요. 철학의 이미지는 마치 블랙홀처럼 깊고 어두운 나선형의 동굴 속에서 저 먼 곳의 불빛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느낌이에요. 앞사람이 건네준 횃불을 들고 동굴 벽에 그려진 암호를 해독하면서요. 이에 비하면 과학이라는 학문의 이미지는 뭐랄까, 단 0.0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스테인리스 선반들이 차곡차곡 3D로 포개져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 이미지랄까요. 먼지 한 톨 없는 선반 위에 온갖 탐구 대상이 놓여있고요.

 

그동안 과학은 잘 벼린 칼처럼 아주 정교하고 세심하고 날카롭고 차가운 이미지였어요. 그런데 요즘 과학의 이미지가 변하고 있어요. 과학은 냉정한 학문이 아니라 참으로 다정한 학문이라는 걸 알려주는 책들이 늘어났어요. 강한 종이 아니라 친화력이 좋은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던가, 삶을 다룬 따뜻한 에세이나 혹은 소설 같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려 깊은 인문학적 시선으로 쓴 「동물은 어떻게 슬퍼하는가」 같은 책들이 새롭게 베스트셀러에 등극했습니다. 그동안 과학 분야의 스테디셀러 제목들이 「코스모스」, 「이기적 유전자」, 「침묵의 봄」 같은 딱딱한 단어의 나열이었던 걸 생각하면 제목부터 확 달라진 느낌이지요?

 

다정하면서도 재미있는 과학책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두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입니다.

 

어떤 소설보다도 흥미진진한 과학 에세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지음 | 정지인 옮김 | 곰출판

저자인 룰루 밀러는 과학 전문기자입니다. 방송계의 퓰리처상이라는 피버디상을 수상했지요. 룰루 밀러는 사랑을 잃고 삶이 끝났다고 생각하다가 끈기 있게 혼돈에 맞서 싸운 어느 과학자를 알게 되고 그의 자취를 좇게 됩니다. 처음에는 혼돈을 질서로 바꾸어 낸 멋진 과학자의 일대기인가 짐작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챕터를 넘길 때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합니다.

 

인생의 영웅이 될 수도 있었던 사람이 세기의 빌런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이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스릴러인지 르포인지 과학기사인지 헷갈릴 정도로 수려한 문장에 담겨 펼쳐집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가슴이 벅차올라요.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신선한 스토리텔링에 매 챕터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보통 책을 읽다 보면 앞으로 이런 식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짐작이 되는데요,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계속해서 튀어나옵니다. 에필로그까지도 허를 찔러요. 정말 무궁무진하게 매력적인 책입니다. “과학 이야기의 외피를 입고 삶의 질서를 말하는 인문 에세이”라는 평이 절묘합니다.

 

혹시 이미 알고 계셨나요?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걸요. 이 책을 읽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세요. 당신은 물고기를 포기할 수 있는지,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인지 말입니다.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지음 | 이민아 옮김 | 디풀롯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뒤집히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특히 과학 분야에서는 기존의 가설을 뒤엎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등장할 때마다 저항에 부딪히지요.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건을 꼽자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상식이 받아들여지기까지의 과정을 들 수 있을 거고요, 아직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연구 결과로는 위의 책에서 이야기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이 있을 거예요.

 

우리가 또 오해하고 있었던 상식 중에는 ‘적자생존’이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적자생존은 생존을 위해 주변 모두를 제압하고 가장 강하고 적합한 종 혹은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다윈은 「종의 기원」을 비롯한 다른 저서에서도 생물이 진화하고 살아남는 방법은 적자생존만이 아니라는 걸 풍성하고 다양한 예시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다윈의 이론을 오해했던 후대의 사람들과 다르게 말이지요.

 

이 책은 개와 늑대, 보노보와 침팬지 같은 동물뿐만 아니라 우리 인류에 이르기까지 다정하고 친화력이 좋은 개체들이 진화하고 살아남았음을 읽기 쉽게 설명합니다. 과학 분야의 책이지만 사회학 책을 읽는 기분도 들어요. 풍부하고 흥미진진한 예시가 많아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요. 생존본능이라는 이유로 독해지고 차가워지는 시대에 진정으로 생존하고 싶다면 다정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상식으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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