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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문화로 배우다

[추천책읽기 : 책VS책] 안녕, 12월! 마음을 단정하게 정리할 시간

by 에디터's 2020. 12. 31.

안녕, 12월
마음을 단정하게 정리할 시간

올 연말은 평년보다 훨씬 더 차분하게 보낼 듯합니다.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북적거리는 송년회라던가 동창회 모임을 대신해 나 자신과 마주하는 오붓한 시간이 더 길어지겠지요. 지난 1년을 차분하게 돌아보며 정리하는 시간이 넉넉해졌으니 다행스럽달까요.

 

혼자이든 여럿이든 1년 중 가장 마지막 달인 12월은 정리와 참 잘 어울립니다. 지난 한 해 유독 ‘정리’라던가 ‘미니멀리즘’이라는 키워드로 출판계와 방송계가 들썩였습니다. 정리 컨설턴트로 유명한 곤도 마리에가 쓴 「정리의 힘」이라던가 「정리의 기술」이라는 책이 미니멀라이프를 견인하고, 방송 프로그램 <신박한 정리>에서는 매주 출연자들의 깨끗해진 집들을 보여주며 말끔하게 정리된 공간을 선보였지요. 이 방송에 출연한 공간 크리에이터 이지영 대표는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드립니다」라는 책을 통해 방송에서 다 말하지 못한 정리·수납의 노하우와 공간 활용법을 소개했어요.

찾아보면 공간 정리의 노하우를 말하는 책들이 참 많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은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요? 매년 12월에 다이어리를 바꾸는 것으로 우리의 한 해를 완전히 정리할 수 있을까요? 방이든 사진이든 다이어리든 인맥이든 연말을 맞아 잘 정리하면 내년에는 좀 더 말끔하게 살 수 있을까요? 그럼 우리의 인생은 언제쯤 정리하면 좋을까요? 과연 인생이 정리가 되긴 할까요? 우리는 죽기 전에 인생을 정리할 수 있을까요?

 

12월과 1월 사이에는 한 달이라는 차이가 납니다. 사실 12월 31일과 1월 1일 사이에는 하루 차이가 나고, 12월 31일의 11시 59분 59초와 1월 1일 0시 0초 사이에는 1초라는 차이밖에 나지 않지요. 그렇지만 매년 이맘때 새로운 달력과 다이어리를 준비하고 내년의 계획을 적어나가다 보면 12월과 1월 사이에는 1년이라는 깊은 세월이 들어있는 기분이에요. 12월과 1월 사이를 길다면 길게, 짧다면 짧게 만들어줄 책 2권을 소개할게요. 올 한 해를 정리하는 데 보탬이 될 만한 책들이에요. 

 

0세부터 100세까지 인생의 100장면 
「100 인생 그림책」 

하이케 팔러 지음, 발레리오 비달리 그림, 김서정 옮김, 사계절

이 책을 쓰기 위해 작가는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을 만나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살면서 무엇을 배웠습니까?" 라고요. (물론 0살이나 1살의 아이들에게 답을 듣긴 좀 어려웠겠지만요.)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각색해 책으로 엮었습니다. 0살부터 100살까지 각 나이에 맞는 짧은 글과 어울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글도 몇 자 적혀 있지 않고 그림도 큼지막합니다. 글과 그림은 따로 보아도, 함께 보아도 색다른 이야기를 건네줍니다.

 

올 한 해 당신은 무엇을 배웠나요? 
1과 1/2세에는 “엄마가 어디론가 가버려도 다시 온다는 걸 배우는구나. 그게 믿음이라는 거야.”라는 글과 함께 아이가 있는 집의 익숙한 풍경이 펼쳐지지요. 0살부터 시작했던 주인공이 점점 자라납니다. 마치 내가 자라는 모습을 담은 앨범을 볼 때의 느낌과 비슷합니다. 한 장 한 장 주인공의 이야기를 따라, 같이 나이를 먹어갑니다. 맞아, 그땐 그랬지! 라며 무릎을 탁 치다가도 어머, 정말? 그랬었던가? 싶기도 하고,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집니다.  
일흔셋의 나이가 되어 묻습니다. "사는 동안 뭔가 다른 일을 해봤더라면 싶은 게 있니?" 여든한 살에는 나이를 한 해 한 해 세는 게 아니라 행복하게 보내는 순간을 센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흔네 살에 나무딸기 잼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요.

 

내 인생의 한순간이 스며든 책  
글의 화자는 어쩌면 어린 시절 나를 길러준 부모님일 수도 있고, 얼굴조차 가물거리는 돌아가신 외할머니일 수도 있고, 작가 자신일 수도 있고, 구름 너머에서 지긋이 나를 바라보는 신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마음속에서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미래의 나 자신일 수도 있겠지요. 그림 속의 주인공도 변화무쌍합니다. 여성일 때도 있고, 남성일 때도 있어요. 인종도 달라지고, 체형도 달라집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면 어느 순간 내가 주인공으로 보입니다. 인생이 보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내 나이가 펼쳐집니다. 그동안 살아온 날들이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여러분의 나이 이후의 인생은 어떻게 그려져 있는지 찬찬히 읽어보시길 바라요. 우리는 어떤 페이지에서 인생을 멈추게 될까요. 우리는 어떤 페이지에서 새로운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될까요. 100세까지의 인생이 담겼지만 실로 100인 100색의 인생이 담긴 책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인생이 담긴 인생책이기도 합니다. 매년 어떤 마음으로 이 글과 그림을 돌아보게 될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인생을 음미하기에 좋은 책입니다.

 

죽음을 정리하는 동안 삶을 돌아보기  
「죽은 자의 집청소」 

김완 지음, 김영사 

많은 것을 정리하는 12월입니다만 정리하기 어려운 것들이 더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인생’이라던가 ‘삶’과 ‘죽음’ 같은 것들이요.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에 주로 공간을 정리하는 경우가 많지요. 시간을 정리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인생의 어느 일부분이 담긴 사진, 혹은 가구, 서류라던가 방을 정리할 뿐, 삶을 정리하거나 죽음을 정리하지는 않습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삶의 공간을 정리하고, 정리 컨설턴트가 설레지 않는 물건들을 버리라 하고, 수납과 청소와 인테리어까지 해주는 시대입니다만, 꼭 그렇게 정리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죽음의 흔적은 삶이 남긴 흔적 
특수청소의 분야가 여럿이지만 김완 작가는 누군가 홀로 죽은 집, 쓰레기가 산처럼 쌓인 집, 오물이나 동물 사체로 가득한 집을 청소합니다. 제목처럼 ‘죽은 사람의 집’을 청소하는 일이지요. 최근에는 고독사가 늘어서 죽은 사람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김완 작가는 그렇게 죽음의 흔적과 냄새가 배어있는 집을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도록 돌려놓는 일을 합니다.  
죽은 사람의 집을 청소하는 동안 작가는 그의 삶이 남긴 흔적을 봅니다. 죽음 이후에 더 또렷해지는 삶의 흔적들이랄까요. 유품을 처리하고, 집을 비우며,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동안 작가는 그가 살아있을 때의 시간을 어림합니다. 하지만 죽음 이전의 삶에 대해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죽음에는, 모든 삶이 그렇듯 넘겨짚을 수 없는 사정들이 있는 법이니까요. 어느 인터뷰에선가 그는 모든 집이 고귀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청소를, 말끔히 치움을, 신성한 노동을 하는 것이겠지요.

 

한 해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죽음을 생각할 때 삶에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남의 죽음에 나의 생을 반추하게 됩니다.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죽음을 맞이하면 좋을지 사색하게 됩니다. 살아있는 동안 머무르는 자리를 가지런히 해야지, 일평생 짊어졌던 것들을 누군가에게 떠넘기지 말아야지, 살아있기에 어쩔 수 없이 지고 가는 것들에 미련을 갖지 말아야지,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한 해를 정리하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글이 무척 정갈합니다. 죽은 이의 흔적을 지우면서 살아있었던 ‘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죽은 공간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사실적으로 담겨 있으니 마음이 자주 울렁거리는 분들은 읽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잔인하고 무서운 영화를 잘 못 보시는 분들이라면 몇 줄 건너뛰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세한 묘사에 덧붙인 올곧은 마음이 글 전체에 단정하게 담겼습니다. 시를 배운 사람의 글은 다르구나 느껴질 정도로요. 그 밭의 들깨는 잘 자라고 있을까 궁금해하는 시인의 마음으로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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