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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해외 이모저모

[미국 특파원] 큰 차를 좋아하는 미국인들

by 앰코인스토리.. 2024. 6. 28.

미국사람들은 큰 차를 좋아합니다. 작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량 10위 안에 무려 여덟 대가 트럭과 SUV였는데요, 미국에서의 큰 차의 기준은 우리와는 약간 다릅니다. 보통 풀 사이즈(Full size) 픽업이나 SUV인 경우 자동차 제조사에서 만들어 내는 승용차로는 가장 큰 사이즈의 차량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단순히 땅이 넓어서 큰 차를 좋아한다고도 할 수 있는데, 주차 공간이 좁은 도시의 주택가도 어김없이 큰 차들이 많이 보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픽업트럭(Pick-up truck)들이 도시에서도 쉽게 발견됩니다. 그럼 미국인들은 왜 이렇게 큰 차들을 좋아하는 것일까요?

 

▲포드 F 시리즈(Ford F Series)는 미국의 자동차 제조 회사인 포드가 생산, 판매하는 픽업트럭이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1950년대에 미국은 황금기를 보냅니다. 나라는 부유했고 사람들도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소비자들의 심리를 반영해 크롬 도금을 한 화려하고 거대한 차들을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휘발유 가격이 비싸지 않았기에 아무도 연비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지요. 큰 차는 고급 차라는 인식이 처음 생기게 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픽업트럭은 6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시골에서 짐을 싣는데 사용하던 작업용 차량이었고, SUV는 당연히 존재하지도 않았지요.

 

▲1952년 포드 F1 (사진출처 : https://namu.wiki/w/%ED%94%BD%EC%97%85%ED%8A%B8%EB%9F%AD)

모든 상황이 오늘날처럼 바뀌게 된 것은 하나의 자동차 관련 규정에서 시작됩니다. 1973년도에 역사적인 석유 파동이 시작되었지요. 석유를 전적으로 해외 수입에 의존하던 미국은 중동의 석유 금수조치의 가장 큰 피해자였습니다.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난 미국은 석유 가격과 공급 변동의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1975년 의회에서 자동차 연료 효율 규정을 만듭니다. 자동차 제조사들에게 10년 후인 1985년까지 리터당 11.7km로 연료 효율을 끌어 올리라고 요구합니다.

 

이 수치는 당시 기준으로 두 배를 넘는 것이기 때문에 제조사들은 기술 개발을 토한 효율 개선을 기대했던 정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 엄격한 규정은 승용차에만 적용되고 소형 트럭을 비롯한 작업용 차량들은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규정의 헛점을 이용하게 된 것이지요. 의회 규정에서 언급하는 소형 트럭의 범주를 오프로드 주행에 적합한 차량으로 정의하도록 로비스트를 동원해 설득합니다. 다음으로 제조사들은 승용차로 사용하지 않던 픽업트럭을 개조한 것입니다. 2인승으로 설계된 트럭을 확장해 뒷자석을 만들어 넣었고 내부는 승용차와 동일하게 모두 바꿔 버립니다. 마지막으로 짐칸을 덮는 천장을 만들고, 뒤에는 문을 달았지요. 이것이 SUV(Sport Utility Vehicle)의 탄생 스토리입니다.

 

▲(북미 기준) SUV의 개념적 시초가 되는 지프 CJ (사진출처 : https://namu.wiki/w/%ED%94%BD%EC%97%85%ED%8A%B8%EB%9F%AD)

이렇게 자동차 제조사들은 연료 효율 규정에 맞는 승용차를 개발하는 것보다 휠씬 적은 돈과 시간을 들여 새로운 개념의 승용차를 만들어냅니다. SUV는 트럭의 프레임을 그대로 사용해 만든 승용차였고, 이후에 SUV의 외관을 가졌지만 프레임 없이 일체형 차체로 이루어진 크로스 오버라는 차종이 개발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심형 SUV를 말하는 차량입니다. 1990년에 들어서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 투자는 대성공을 거두어, SUV는 미국 내 판매 차량 중 20%를 차지하게 되지요. 게다가 세단보다 비싸기에 자동차 회사들은 기존의 일반 차량의 라인업을 줄이고 수익성의 높은 SUV 생산을 대폭으로 늘렸지요.

 

▲현대적 SUV를 처음으로 완성시킨 지프 체로키 XJ (사진출처 : https://namu.wiki/w/%ED%94%BD%EC%97%85%ED%8A%B8%EB%9F%AD)

그래서 정부의 예상과는 반대로 전체 자동차의 연료 효율이 올라가기는커녕 더 내려가게 되었지요. 이에 정부는 적용 기준을 차종의 범주가 아닌 차의 크기로 변경합니다. 휠 베이스와 폭을 곱한 수치가 기준 안에 들어오면 모든 규정 적용의 대상이 되어야 했지요. 세단이든 SUV든 픽업트럭이든 승용차의 목적으로 사용되던 차량들은 대부분 일정 크기를 넘지 못했기 때문에 변경안은 효과를 발휘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차들이 커지기 시작합니다. 제조사들은 규정의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차 크기를 키웠고, 그것이 불가능한 세단 등의 라인업은 생산을 줄이거나 단종시켜버리는 트렌드를 만들었습니다. 미국 회사들이 포기한 소형 차종의 일부는 일본과 한국회사들이 대체하기도 했지만, 소형차 전문 브랜드들은 아예 미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점유율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자동차 업체들은 소비자들이 더 큰 차를 요구함에 따라 그에 맞춰 차의 크기가 지속적으로 커져왔다고 말합니다. 조사에 따르면, 픽업트럭의 경우 2000년부터 18년간 크기가 커지면서 무게가 24% 증가했고 그로 인해 교통사고 시 치명률은 50% 증가했습니다. 운전자들은 자신의 안전을 높이기 위해 더 큰 것을 원하게 되었지만 반대로 보행자의 안전은 크게 낮아졌습니다. 특히, 일반 시내 도로에서 이런 큰 픽업트럭을 만나면 괜히 피하거나 더 긴장을 하게 됩니다.

 

▲미국 시장의 주요 SUV 모델들과 중형 세단 사이의 전면 사각지대 차이 (사진출처 : https://namu.wiki/w/%ED%94%BD%EC%97%85%ED%8A%B8%EB%9F%AD)

결론적으로 석유 부족에 대응하고자 했던 미국의 정책이 뜻밖에도 차량의 크기에서 미국사람들의 삶의 모습까지 꽤 많은 것을 바꾸고 있습니다. 지금은 전기차의 시대로 가는 전환점에서 소비자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식이 또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