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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멸치

by 앰코인스토리.. 2024. 6. 27.

사진출처 : freepic.com

멸치를 손질해주면 멸치볶음을 만들어준다는 엄마의 말씀에 하던 일도 멈추고 멸치를 다듬기 시작했다. 엄마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다양한 요리를 참 혁신적으로 만드신다. ‘어? 이거는 처음 먹어보는 건데?’하는 음식이 불쑥불쑥 저녁 밥상에 오르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이 음식이다. 큰 멸치를 가지고 하는 멸치볶음이다.

 

처음에는 그리 정이 가지는 않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하나씩 집어먹다 보니 좋아하게 되었다. 다만 멸치 손질에 손이 가다 보니 누군가 옆에서 도와줬으면 하는 눈치를 보내곤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우선 멸치 머리를 따고 손가락으로 위아래를 누르면 멸치가 반으로 갈라진다. 내장을 제거하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나서 꼬리까지 제거하고 빈 그릇에 담으면 된다.

 

큰 멸치다 보니 뼈가 꽤 굵어 내가 손질을 할 때는 뼈까지 발라보려 했지만 엄마는 “뼈는 칼슘이다.”라는 말로 은근히 압박을 가했다. 달달 볶다 보면 뼈도 고소한 맛을 내기도 하지만, 씹을 때마다 입 안을 쿡쿡 찌를 때가 있어 조심스럽게 먹어야 했다. 그렇게 20마리 정도만 손질해도 그릇 안이 멸치로 수북했다. 엄마는 냄비 안에 간장과 설탕을 넣고 다진 마늘도 넣어 멸치를 한참 볶으셨다. 나무 주걱을 이리저리 저어가며 냄비에 눌러 붙지 않도록 재빠른 손놀림을 이어갔다.

 

곧 양념이 기포를 터뜨리며 탁탁 소리를 내면, 미각을 자극하는 냄새가 쉴 새 없이 풍겼다. 물론, 멸치와 꽈리고추를 함께 볶는 것이 영양이나 빛깔이 좋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물러지고 수분이 만들어져 멸치 식감이 썩 좋지 않는 것을 엄마는 싫어해서 기다란 고추 몇 개의 배를 갈라 함께 집어넣고 볶는 것을 선호했다.

 

멸치에 양념이 잘 스며들고 더 볶으면 양념이 탈 수 있겠다 싶을 때면 비로소 불을 끄고 냄비에 잘 볶아진 멸치와 고추를 접시에 담아내 주셨다. 뜨거운 열기가 공중으로 한번 솟아오르다 사라졌다. 오랜만에 먹는 멸치볶음이라 밥을 먹기도 전에 맨손으로 집어먹고 싶어졌다. 갓 만들어진 반찬은 그 자리에서 한 조각이든 두 조각이든 바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는 것을 알기에 불쑥 하나를 집어 들었다. 예전 같으면 손등을 툭 치며 “못써!” 한 마디 하셨겠지만 요즘은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신다.

 

역시 언제나 먹어도 오랜만에 먹어도 똑같은 맛이다. 사람의 입맛이 간사하다는 말을 드라마에서 들은 적이 있는데, 꽤 오랜 세월이 지나도 같은 맛이라니!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밥 먹기 전에 ‘괜히 먹었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 번 더 먹어 보고 싶은 충동이 생겨 버렸기 때문이다.

 

하얀 쌀밥이 모락모락 김을 내고 있었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밥이 한 공기 수북했다. 평소에는 이보다 적은 양이 밥을 소화했지만 오늘은 용기를 좀 더 내어보리라. 김, 김치찌개, 멸치볶음으로 행복한 저녁 밥상이 만들어졌다. 큰 멸치에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 내신 엄마표 밥상을 다시 보니 옛날 추억이 하나 둘 스쳐 지나갔다. 큰 멸치는 국물용이나 김치찌개용으로 사용했던 시절, 씹어 먹기에는 잔멸치가 당연히 제격이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올라버린 잔멸치 가격에 천덕꾸러기였던 큰 멸치로 반찬을 만들어주셨던 그 정성을 새삼스럽게 다시 느껴본다.

 

달콤하고 짭조름한 맛이 멸치에 잘 스며들어 쫀득쫀득한 식감이 제대로 느껴졌다. 크게 맵지 않은 고추와 함께 멸치를 씹다 보면, 밥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이 술술 넘어간다. 칼슘의 보고라는 멸치를 하나하나 먹다 보니 멸치와 부쩍 가까워진 느낌마저 든다. 다음에도 잘 말려진 멸치를 보면 잊지 말고 꼭 한 봉지 사 들고 와야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