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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계단

by 앰코인스토리.. 2024. 3. 26.

사진출처 : freepik.com

봄이 오면서 가장 먼저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창문을 열어 보니 봄 기운이 완연해 신발을 꺼내 신었습니다. 외투를 걸치고 신발끈도 단단히 동여매었습니다. 겨우내 하지 못했던 등산을 해볼 생각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산내음이 코 끝에 퍼지면서 오르기도 전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었던 산길은 얼다녹다를 반복했던 탓인지 가지런히 놓인 나무계단들이 이리 깎이고 저리 비틀어져 한발한발 내놓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웠습니다. 언젠가 산길을 걸으면서 이 높은 곳까지 과연 이 무거운 것을 들고 올라왔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가파른 산길에 차곡차곡 놓인 계단은 사람들의 정교한 솜씨가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 내지 못했을 작품이라 생각했습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꽤 많은 계단을 밟고 또 밟고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높이가 있다 보니 숨도 고를 겸 햇빛이 드는 계단을 골라 앉아보았습니다. 아직은 찬기운이 남아 있다 보니 금세 온몸에 한기가 퍼졌습니다. 가방을 돌려 물병을 꺼내어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고요한 적막함 속에서 간간히 들리는 산새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습니다. 산소를 마구 내뿜는 풀과 나무들의 왕성한 활동이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계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저 멀리 계단들이 작게 보였습니다. 오를 때는 몰랐던 높이를 가늠해 볼 수 있었습니다.

 

얼마전 유명한 건축가가 방송에 나와, 계단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강의를 하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피라미드의 계단 모양 고대 양식에 등장했던 수많은 계단은 사회적 신분을 나누는 수단으로 쓰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계단 위에서 내려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땀이 거의 마르게 될 즈음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직도 올라가야 계단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며,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 정상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꽤 많은 시간을 걸어 도착한 산 정상은 가슴을 뻥 뚫리게 만들었습니다. 사방에 병풍처럼 놓인 산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으며, 조그맣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과 건물들을 보니 큰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층층이 놓인 계단들이 없었다면 도전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와 기쁨이 배로 켜진 듯싶었습니다. 한 층 한 층 쌓여 올렸던 이들의 땀방울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내려 가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수월했습니다. 오르막길은 끙끙대고 한발을 내딛어야 했다면, 내리막길은 자전거 페달을 놓아 가속도가 붙는 것처럼 탄력이 붙었습니다. 울퉁불퉁한 산길이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들이 가지런히 높인 계단들로 하여금 발길을 휠씬 가뿐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몸과 다리가 따로 노는 것처럼 속도를 냈습니다. 휠씬 따스한 날씨에 산을 오르는 이도 늘어나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다 보니 그야말로 구름을 나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계단과 마주합니다. 산 속에 놓인 계단뿐만 아니라 건물 위로 오르기 위한 계단들 집까지 가기 위한 계단들, 그리고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밟고 올라가야 할 승진 계단들. 삶은 살면서 무수한 계단을 밟고 또 밟고 올라야 합니다. 하지만 힘들 때는 계단에 앉아 숨을 고르기도 하고 내가 올라온 계단을 세어 보거나 나를 돌아보는 시간도 갖고 잘 추슬러 다시 목표를 향해 목적지에 도달하려고 신발끈을 고쳐 매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하나의 과정이 소중하다는 것을, 한 층 한 층 만들어진 계단은 나에게 알려주려는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 계단에 오르기 전에 만난다면 대뜸 가위바위보를 해보자고 얘기를 꺼내고 싶습니다. 한 층 한 층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올라가면 혼자 오르는 것보다 힘이 덜 들을 테니까요.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