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가위 바위 보

by 앰코인스토리.. 2024. 1. 23.

사진출처 : freepik.com

가위는 바위를 자를 수 없어서 가위는 바위를 이길 수 없고, 바위는 보자기를 쌀 수 있어 보를 이길 수 없으며, 보자기는 가위로 자를 수 있어 가위가 보를 이긴다는 그럴싸한 이유를 설명했던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순간 무릎을 딱 치며 고개를 끄덕였었다. 가위바위보를 알고 수십 번 가위바위보를 만들어 가면서 승리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지만, 가위바위보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은 없었다.

 

누구에게나 가위바위보는 공평했다. 많은 것을 가진 친구도 많은 것을 갖지 않은 친구도 가위바위보 앞에서는 누구나 같은 출발점에 서 있다.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뭐라도 해보려는 노력으로 손과 손을 엇갈려 잡고서는 한 바퀴 돌려 그 안을 쳐다보면 이길 수 있다는 비법이 있다는 말에 가위바위보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그 방법을 따라 해봤지만 일종의 주술이라고나 할까? 그게 정답을 가르쳐 주진 않았다. 그걸 믿고 “가위바위보!”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을 내밀어 보지만 승패는 나의 믿음을 번번이 비켜나갔다.

 

가위바위보를 잘 하고 싶어서 가위바위보를 자주 이기는 친구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적도 있었다. 매서운 눈초리로 친구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보!”라는 마지막 말을 끝날 때 친구 손의 움직임도 한컷한컷 사진을 찍듯 쪼개 보았다. 하지만 나와 혹은 다른 친구와 특별히 다른 점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냥 운이라고 말하기엔 높은 승률이라 우연은 아닐 듯싶었다. 그래서 친구를 붙잡아 놓고 가위바위보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면 상대방이 무엇을 낼지를 순간적으로 간파를 해야 한다는 알 듯 모를 듯한 이야기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이는 복권 1등 당첨도 모든 것을 하늘에 맡겨서는 안 되고 부단한 노력으로 이리저리 1등 번호를 연구해 보면 근사치가 나올 수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와 비슷했다. 가위바위보에 관심이 많다 보니 가위바위보에 관한 단어를 듣게 되면 으레 귀가 반응했다.

 

언젠가 밥을 먹다가 TV에서 가위바위보 달인을 소개한다는 진행자의 멘트를 듣고 나서 숟가락을 내려놓고 TV 앞에 바짝 다가가 앉았다. ‘가위바위보 달인이 따로 있었구나! 그러면 그렇지?’하며 호기심을 좀 더 끌어올렸다. 가위바위보가 시작되자마자 달인은 속사포처럼 가위바위보 세 가지 중에 하나를 신속하게 내놓았다. 신기하게도 상대방을 손쉽게 이기는 모습이 참 경이롭기까지 했다. TV라는 매체가 과장과 거품이 있다고 느꼈기에 달인의 연전연승에 색안경을 끼고는 있었지만, 패배 없이 이겨 나가는 모습은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달인이 비법을 공개한다며 MC가 뜸을 들였고, 더욱더 눈에 힘을 주고 귀를 열어야 했다. 거창한 비법이 공개되리라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달인이 하는 이야기 속에서 비법으로 여겨지는 단어들이 나오지 않자 서서히 실망으로 바뀌어 갔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상대방이 내고자 하는 것을 빠르게 간파를 해야 합니다.” 누구든 그렇게 하고 싶을 것이다. 천재는 타고 나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가위바위보를 잘 하는 사람도 어쩌면 하늘에서 점 찍어 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비록 가위바위보에 대한 비법을 아직은 찾지 못했다. 예나 지금이나 누군가가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하면 순간 떨리는 게 사실이다. 많이 이겨보지 못해서다. 하지만 그 어느 것보다 같은 위치에서 33%의 승률을 가지고 나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그리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가위바위보에 집중하면 짜릿한 승리의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삼세 판을 내세워 공정함을 더 높이면 패배한다고 해도 불만은 없다.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강할 때는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호흡을 한 번 더 가다듬어야 나의 올바른 선택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배우고 있다. 누군가가 “오늘 심부름은 누가 갈지 가위바위보로 정하죠?” 한다면 나는 기꺼이 응할 것이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