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그녀를 떠나 보내고, 강남역 앞에서 2호선 열차를 기다리며 시디플레이어를 꺼내 들었다. 지금은 없어진 타워 레코드에서 구매했던 Toto의 베스트 앨범. 한창 기타를 배우고 있던 터라 당대 최고의 세션들이 만든 Toto의 전설은 익히 들었고, 드럼을 배우던 그녀를 위해 거리낌 없이 거금 13,000원을 들였었다. 쓰린 속을 부여잡으며 CD 케이스의 포장을 뜯고 플레이어에 넣자 약간의 튕김 후 첫 번째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1집 ‘Toto’ (아티스트 Toto, 발매 1978)
출처: royaltrilogy.blogspot.kr
<TOTO - I'll be over you>
‘I’ll Be Over You.’ 뜻도 모르면서 흘러나오는 선율을 통해 이별 노래임을 직감했다.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던 눈물…. 열일곱 살 겨울을 이 앨범 하나와 함께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제목인 ‘I’ll be over you’는 ‘이제 너를 잊는다’는 말의 은유적인 표현이다. Toto의 건반 담당이자 작곡가 스티브 루커더(Steve Lukather)는 곡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이 곡을 랜디 굿럼(Randy Goodrum)과 함께 만들었는데, 굉장히 빨리 적은 곡이고 실제로도 몇 분 만에 만든 곡입니다. 이 곡은 (연애가) 끝난 후에야 느낄 수 있는 상실감과 후회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소녀를 아직 깊이 사랑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헤어진 후에야 그러지 말았어야 함을 깨닫는 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 스티브 루커더(Steve Lukather)
출처: www.tcelectronic.com
부드러우면서 서정적인 멜로디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스티브 루커더와 마이클 맥도날드(Michael McDonald)의 부드러운 음색, 그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전설적인 세션들의 연주. 1986년 싱글(Single)로 발표된 이 곡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 빌보드 100 차트에서 11위에 올랐다. ‘고작 11위?’하고 반문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1986년은 빌보드 전성기의 마지막 해로 당시 1위 곡들을 나열하기도 벅찰 만큼 1위가 주마다 바뀌는 시대였다. 시대를 풍미한 명곡 Whitney Houston의 ‘Greatest Love of all’도 3주 만에 정상에서 내려왔으니 말이다.
여기서 그룹 Toto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모든 것(Everything)’이란 의미의 라틴어인 ‘Totus Toti’의 이니셜을 따서 Toto라 이름 지어진 이 그룹은, 당대, 아니 현재를 포함한 최고의 세션들인 제프 포카로, 데이빗 행고이트, 스티브 루카서, 스티브 포카로, 데이빗 페이치, 마지막으로 보컬 보비 킴블의 6인조로 77년 겨울에 결성되었다. 78년 데뷔 앨범 발표 당시, 미국 레코드 업계는 극심한 불황을 겪는 공황기였기에 디스크 제작자 측에서는 성공적인 판매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했으나 이들의 앨범은 3백만 장 이상이 팔려나갔다. 게다가 트리플 플래티늄을 기록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 후 ‘Africa’, ‘Hold the Line’, ‘Rosanna’, ‘George Porgy’, ‘I Won't Hold You Back’, ‘Stop Loving You’, ‘Pamela’, ‘Home of the Brave’, ‘I'll Be over You’, ‘99’, ‘Lea’ 등 수많은 히트곡을 역사에 남긴 그들의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대부분 그룹과 달리 보컬(Vocal) 위주의 그룹이 아닌 세션 위주의 그룹이었다는 점이다. 아래 도표와 같이 그들에게 보컬은 자신의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될 만큼, 1991년까지 지속적으로 변해왔고 1991년부터 1997년까지는 심지어 보컬 없이 공연 때마다 객원을 초청하는 유례 없는 그룹이기도 했다. 국내에서의 발자취를 따라 거슬러 가보면 그룹도 대표곡들도 그들의 세계적인 명성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도, 어찌 보면 보컬의 색채와 힘에 주로 감동을 하는 우리나라 음악 시장의 특성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 Toto의 Vocal List
출처 : en.wikipedia.org
이처럼 유명한 세션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일인! Toto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역대 최고의 드러머(Drummer) 중 하나로 추앙되는 (포카로 형제 중) 제프 포카로(Jeff Porcaro)다. 재즈 뮤지션인 조 포카로(Joe Porcaro)의 아들이기도 한 그는, 1954년 4월 1일 하트포드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부터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고, 열일곱 살이 되어서는 미국의 소니 앤드 셰어의 투어 멤버로 참여하며 전문 연주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1992년 8월 5일 캘리포니아의 히든힐스 저택에서 서른여덟의 나이로 단명하기까지 그의 업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핼프 타임 셔플 그루브와 왼손 스네어 고스트 노트’.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용어지만, 간단히 말해 현대 드럼 연주의 꽃이라는 16비트 패턴 개념의 설립자가 바로 제프였다. 그렇다고 그가 모든 곡에서 단연 그의 존재를 보여주는 세션이었나? 답은 ‘No’다. 아니, 오히려 그의 드럼은 너무나 평범해서, 일반적인 음악인이 들었을 때는 전혀 그의 뛰어남을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드럼은 음악을 이끌되 튀지 않는다.’는 기본에 충실한 그의 연주의 효과는 주변 지인들의 회고를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 제프 포카로(Jeff Porcaro)
출처: blog.michaelbloomphotography.com
화려함보다는 충실한 리듬이 연주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그의 연주, 그리고 그 연주와 함께한 잔잔한 가운데에도 나를 휘어잡는 감성적인 곡 ‘I’ll Be Over You’. 이 시대 최고의 드러머가 연주하는 팝 발라드(Pop Ballad)를 통해, 잠시 첫사랑의 아련함에 젖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며 글을 접는다.
Toto의 히트곡 모음
< Toto - Africa >
< Toto - Hold The Line >
<Toto - Ros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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