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행동거지는 한 달이 멀다 하고 바뀐다. 지난달만 하더라도 현관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할머니의 스마트폰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이제는 옛일이 되었다. 할아버지의 눈치를 살살 살피고는 슬며시 리모컨을 손에 쥔다. 그때부터 노란색 버튼을 누르고는 <쫑알쫑알 똘똘이>에 흠뻑 빠져 들어, 옆에서 건드려도 꿈쩍하지 않는다. 이 시리즈는 40여 편이나 되어서 최소 두 시간은 정신을 잃게 만든다. 손자 집에는 케이블TV를 신청하지 않아서 어떻게 배웠느냐고 물었더니, 아빠가 스마트폰으로 보게 했다고 한다.
지난 10월의 TV 시청료가 평소보다 23,000원이나 더 나왔다. 그럴 리가 없어서 통신사에 문의했더니, 대뜸하는 말이 “혹시 지난 추석에 손자가 왔다 갔나요?”한다. 51개월짜리가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아서 1년치를 결재했단 말인가. 손자와 소파에 앉아있던 사위도 모르쇠다. 인터넷으로 결제한 것이기에 환불이나 한 달치로 끝내지는 못한다는 대답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지만, 케이블 업체에서 정해 놓은 1111을 그대로 두어서 손자가 그 번호를 누른 것으로 추정하는 것 외에는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다.
눈에 무리가 간다고 엄마가 리모컨을 빼앗으니 전자계산기로 갈아탄다. 일찌감치 산수에는 소질이 있더니, 계산기에서 억이 아니라 조와 경까지도 숫자를 입력해서 읽는 것이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옆에 두고 같이 놀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커버렸다. 4일 뒤에는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기에 잠시나마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떠날 때는 언제나 미련이 남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는 얌전히 배꼽인사를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여기서나 자기집에 서나 버튼을 한 번 더 눌러서 정지시키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할아버지! 밥 많이 먹고 잠 많이 자고 운동하고 아프지 마세요!”하더니, 주차장에서 헤어진 할머니에게는 뒷좌석에서 창을 내리고는 “할머니! 허리가 아프니까 가만히 누워 계세요!”한다.
손자는 날이 갈수록 수준이 올라가고 할아버지는 뒷걸음을 치고 있으니, 할머니는 손자보다 못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잠자리에 들어 ‘만날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감동시키는 손자를 누가 보냈을까?’하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돈다. 아들과 딸보다 더 정이 가는 손자를 오래오래, 그것도 자주 보고 싶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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