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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장미베고니아

by 앰코인스토리.. 2023. 4. 18.

사진출처 : freepik.com

이모라 부르면서 친하게 지내는 분이 있다. 집에 놀러 가면 엄마처럼 맛있는 것을 많이 챙겨 주셔서, 찾아가기가 민망할 정도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음식을 차려내신다. 그런데 그분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단독주택이다 보니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관문 가까이에는 화분이 두세 단으로 쌓여있다. 꽃을 좋아하고 화초를 좋아하다 보니 외출할 때마다 화분 한두 개씩은 사 오는데, 문제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죽이는 꽃을 그렇게 매번 사 오세요?”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꽃집을 지날 때면 사고 싶은 마음이 들어.”라고 하시니 딱히 뜯어말릴 수도 없다. 집으로 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자 배웅하신다며 나를 따라나섰다. 그리고는 나의 손에 만 원짜리 몇 장을 쥐여주며 “나 부탁이 하나 있는데….”라며 말을 이어 나가셨다. “이거 얼마 안 되는 데 받고, 좋은 화분인데 그냥 두기 아까워서 그러는데 꽃나무 좀 사다 주겠니?” 말씀하셨다. 그냥 주면 안 받을 게 뻔하다 싶어 말씀하신 듯싶었다.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이었다. 여러 개의 화분 중에 쓸 만한 놈을 몇 개를 골라 봉지에 담았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집 가까이에 있는 꽃집을 떠올려 보았다. 되도록 화초가 많이 진열되어 있는 곳이면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꽃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꽃집은 여러 곳이었지만 화분에 심을 화초를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 많이 오른 가격도 문제이긴 했지만 손을 자주 빌리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는 화초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선인장보다는 꽃이 피는 화초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발품을 팔아도 조건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곳이 전통시장이었다. 시장 입구에서 50m 걸어 들어가면 꽃집이 있었다. 꽃을 살 기회가 없어서 그곳에 발길을 머문 적은 없었지만, 시장을 보기 위해 그곳을 지날 때면 매번 두세 명의 손님이 꼭 꽃을 고르고 있었다. 꽃집은 간판도 없었고 깔끔한 외관으로 장식되어 있지도 않았다. 가게 앞에 화분과 꽃나무 모종을 펼쳐놓고 오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정도였다.

가게 주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에 앞서 내가 살 만한 꽃나무가 있는지 쭉 훑어보았다. 봄이라 그런지 진열된 꽃들의 색깔이 선명해 보였다. 꽃에 관한 지식이 많지 않다 보니 꽃 옆에 꽂혀 있는 푯말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중에 하나둘을 선택하기란 여전히 어려웠다. 주인에게 조언을 구해보고자 어렵게 운을 띄웠는데 어느새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다. 반쪽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무작정 따라 들어갔다. 뭔가는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새로운 별천지가 등장했다. 참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하마터면 탄성을 지를 뻔했다. 선인장과 다육식물들이 줄지어 진열되어 있었다. 은은한 음악이 흐르면서 꽃들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주인을 어렵게 만나 꽃 하나를 추천받았다. 장미베고니아. 처음 보는 생소한 꽃이었다. 노란 꽃이 장미꽃처럼 겹겹이 쌓여 봉우리를 만들었다. 한눈에 봐도 참 아름다운 자태를 지니고 있었다.

“물을 자주 않아도 되고 2주에 한 번 정도 주면 오래 살 수 있을 겁니다.” 주인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다른 것보다 관리가 쉽다는 게 마음에 와닿았다. 장미베고니아를 받아 들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작은 선인장을 하나 더 집어 들었다. 화분 서너 개를 가져왔기에 가져온 화분은 다 활용하고 싶어서였다. 주인과 긴 대화를 나눌 시간은 되지 않았지만 꽃나무에 대한 주의사항을 이것저것 듣고 나니 꽃에 대한 자신감이 절로 생겨났다.

 

장미베고니아를 하얀색 화분에 옮겨 심고 나니 한결 더 멋이 났다. 그리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 이모네 집으로 향했다. 예쁜 꽃을 가능한 빨리 보여 주고 싶었다. 현관문에서 나오는 이모도 노란 꽃에 흐뭇한 미소를 지어줬다. “잘 키우셔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사항을 꼼꼼하게 알려 주었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한 달 후에도 잘 자라고 있을 장미베고니아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오랜만에 느껴 보았던 꽃집에 대한 황홀함이 꽤 오래 지속될 거 같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