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로 여행을 하면 이륙보다는 착륙이 더 설렙니다. 긴 여정이 끝나간다는 안도감과 도착지에서의 새로운 기대감에 긴장감이 교차합니다. 업무나 계획했던 일이 마무리가 되어갈 때도 이러한 긴장감과 안도감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일을 마치다는 뜻을 가진 ‘종료(終了)’, 일이 기한이 다 차서 끝냄이라는 ‘만료(滿了)’, 완전히 끝냄이라는 ‘완료(完了)’, 모두 ‘마무리’를 말합니다. 시작이 있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끝냄(Finish)’입니다. 인생에 있어서의 완료는 죽음일 것입니다. 다만 이 죽음이 평안해야 비로서 인생의 마무리라 할 수 있습니다. 바흐의 <칸타타 아리오소>는 죽음 끝에 서 있는 자신을 구원하여 평안하기를 바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바흐, 칸타타 아리오소 J.S.Bach - Arioso from Cantata BWV156
영상출처 : https://youtu.be/tod_rbkXAHI
마무리라 하면 죽음 또는 실망, 떠남 등을 떠올리게 되지만, 아직 살아야 할 날이 많은 우리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여정의 출발점이라고 보는 것이 좀 더 희망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때로는 잠시 쉼을 위한 종료를 선택하는 결정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수명을 다한 기계들을 종료시킬 때의 뿌듯함과 아쉬움은 엔지니어라면 공감할 것입니다.
프랑크, 생명의 양식 César Franck - Panis Angelicus
영상출처 : https://youtu.be/CdKAHp9m1Q0
마무리라는 것은 비우는 작업이 필요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널브러져 있던 전선이나 수리를 위한 놓아두었던 도구들이 정리되고 제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시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청소라는 것은 일의 시작과 끝의 여정을 함께해준 동반자인 것입니다.
일을 시작할 때 정리 정돈해주고, 일 중간의 바쁜 틈에도 닦아지고 쓸어지고 정리되면서, 시작과 마무리가 완성되도록 묵묵히 봐주고 도와준 것이 청소라는 조력자인 것입니다. 연말이 되면 대청소를 하면서 묵혀 두었던 때를 씻어내고 구석구석을 청소하던 학창시절이 생각납니다. 차이콥스키의 현악 사중주를 들으면 차분한 현악기 소리가 마음의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깨끗이 정화시켜주는 느낌을 들게 합니다.
차이콥스키 현악 4중주곡 1번 2악장 Tchaikovsky - String Quartet No.1 2mov
영상출처 : https://youtu.be/pbC1LNm3TTc
마무리 시간이 되면 다 끝냈다는 만족감보다는 아직 끝나지 않는 숙제들로 인해 아쉬움과 후회가 심장을 아리게 합니다. 아직 문제는 많이 남아있는데 시간은 끝내라고 재촉하고 밀려오는 압박감은 손과 머리를 떨게 합니다. 매번 맞이하는 연말이지만,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조바심은 수명을 단축시키는 저승사자 같습니다. 모든 일에는 마감이라는 것이 있고 끝냄이 있다는 것을 머릿속에서 인지하지만, 막상 이러한 마지막에 다다를 때면 후회가 마음을 가득 채웁니다.
클래식 음악 연주가들 사이에서, 특히 바이올린 연주자라면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곡에 대한 고통이 있습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테크닉이 필요한 이 연주곡은 바이올린 연주가라면 반드시 넘어서야 할 벽 같은 연주곡입니다. 엔지니어라면 이러한 넘어야 할 벽 같은 어려움을 맞이했던 적이 있을 겁니다. 벽 하나만 넘으면 완성이 되는데, 벽을 넘지 못하고 기한을 넘기면 자책감에 마음과 주변이 혼란해집니다. 답안을 채우지 못한 채 끝난 후회스러운 시험 같습니다.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 Paganini 24 Caprices, Op. 1: No. 24 in A Minor
영상출처 : https://youtu.be/ITzcZia7fsQ
시험에서 답안을 다 채우지 못했거나 벽을 넘지 못했다고 해도 사람에게는 보장받지는 않았지만, 내일이라는 새로운 시간이 있습니다.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라는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휘몰아치는 겨울 폭풍이 매섭고 춥지만, 계절은 봄이라는 희망이 있어 견디고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도 봄이 있습니다. 겨울만 있지는 않다는 것이 나이가 들면서 얻은 결론입니다. 시험에 낙방했다고, 일이 계획대로 완료되지 않았다고 쭈그리고 앉아 있기보다는 나에게 다시 주어질 수 있는 도전의 기회를 찾는 것이 남은 날을 보람 있고 건강하게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비발디 사계 중 겨울 1악장 Four Seasons, A. Vivaldi - Winter: I. Allegro non molto
영상출처 : https://youtu.be/e7hdEOTpFIQ
머지않아 새로운 시간의 해가 떠오릅니다. 새해는 좀 더 나아지기를 기대해 보는 것은 사람이기에 가져 볼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됩니다. 지난 일은 어찌 할 수 없지만 미래는 알지 못하기에 자신이 만들 수 있습니다. 지난 후회를 주춧돌로 새로운 건물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실패를 후회스럽다고 버려지는 과거가 아닌 성공을 위한 양식이라 생각하고 꼭꼭 씹어 마음 속 곳간에 채워놓는다면 인생은 성공적인 마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마무리가 안되었다고 또는 벽을 넘지 못했다고 후회하기보다는 떠오르는 해를 보며 다시 도전하는 다짐을 하는 것이 자신을 위한,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동료들을 위한 진정한 마무리가 될 것입니다. 올해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는 실패 대신 희망과 도전으로 마음 속 곳간을 가득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 Ode an die Freude, Beethoven Symphony 9 (Choral) 4th
영상출처 : https://youtu.be/cep8Ru4TL4k
※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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