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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문화로 배우다

[추천책읽기]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작가, 한강의 대표작 4권

by 앰코인스토리.. 2024. 12. 24.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작가,
한강의 대표작 4권

많은 분이 노벨문학상을 원어로 읽을 수 있다며 좋아하시는 요즘입니다. 노벨문학상은 특정한 작품이 아니라,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에게 주는 상이지요. 그래서 한강 작가의 여러 작품을 통해서 작가가 추구하는 세계를 다채롭게 들여다볼까 합니다.

 

한강 작가의 작품 속에는 겹쳐지는 단어들, 이미지들이 나타납니다. 특정한 의미를 내포하는 키워드들이 작품들을 넘나들며 특별한 이미지를 만들어요. 주요 작품들에 나타나는 이미지만 보더라도, 나무라던가, 식물의 이미지, 어둠과 밤의 이미지, 몸, 육체에 대한 이미지, 눈으로 결정화된 물, 혹은 계곡물, 빗물, 바닷물, 밀물 같은 물의 이미지, 흰색과 검은색의 이미지, 새에 대한 이미지들을 찾아볼 수 있어요. 이런 이미지들이 작품에 따라 두드러졌다가, 사그라들었다가, 교차하고, 중첩되고, 겹겹이 쌓이면서 더 큰 의미가 됩니다.

 

특정한 이미지가 머금은 의미를 따라가다 보면, 다른 작품 속의 이미지가 같이 떠오르면서 작품과 작품 사이에 켜가 쌓이는 느낌이랄까요. 마치 「작별하지 않는다」의 엄마 정심이 오래된 스크랩 속 신문지가 바스라지지 않도록 신문지 사이사이에 습자지를 끼워둔 느낌입니다. 스크랩한 신문의 글자는 습자지를 통해서 보면 뿌옇게 보이지만, 습자지 아래의 신문지에는 바스라지지 않은 명징한 의미가 살아 있습니다. 뿌연 습자지를 끼운 스크랩은 원래 신문의 부피보다 훨씬 더 크고 묵직해지지요.

 

오늘 소개해 드릴 시집을 포함한 대표작 네 권의 책 속에서 작가가 줄기차게, 지속적으로 들이미는 단어들, 이미지를 찾아볼까요? 이를 따라가며 읽어보면 뿌옇게 보이던 이미지가 명징한 상징을 가지고 다가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작가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세계로 들어가는 재미있는 방법이 되겠지요.

 

“어린 새가 날아가는 걸 보았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이 책은 1993년 시인으로 등단한, 소설가로 잘 알려진 작가 한강이 엮은 첫 시집입니다. 총 60편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1993년에 등단한 한강이 거의 20년 만에 시집을 엮어냈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오랜 시간 응축된 시들이 담겨 있지요.

 

한강 작가는 시인으로 먼저 등단한 후에 소설을 썼어요. 작가들 사이에서도 ‘소설은 엉덩이로 쓰지만, 시는 천재만이 쓸 수 있다’는 말을 종종 하는 걸 보면, 시는 소설과 또 다른 재능을 필요로 하는 영역인 것 같습니다. 한강의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소설을 읽으며 시를 읽는 것 같다고 하는데, 아마 이 시집을 읽어보시면 시가 소설 같다고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어요. 소설의 행간에 다 담지 못한 단단한 이야기들이 시 한 편, 한 편으로 새롭게 자라나 또 다른 열매를 맺고 있는 느낌이에요.

시집의 목차는 5부로 나뉘어집니다. 1부의 제목은 ‘새벽에 들은 노래’이고 3부의 제목은 ‘저녁 잎사귀’입니다. 새벽과 저녁의 미묘하지만 다른 온도와 습도, 어스름한 빛의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2부는 ‘해부극장’입니다. 붉은 색감이 느껴지시지요? 그래서 2부에 ‘피 흐르는 눈’ 연작이 실려 있습니다. 4부는 ‘거울 저편의 겨울’이라는 제목이에요. 흑백의 대비가 쨍한 추운 겨울에 시인은 “불꽃의 눈동자”와 “파르스름한/심장/모양의 눈”을 이야기합니다. 5부는 ‘캄캄한 불빛의 집’입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불빛은 환하게 빛을 주어야 하는데 불빛이 캄캄하다니요. “사는 일이 거대한 장례식일 뿐이라면”, “희망은 병균 같”은 것일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러나 시인은 어느 늦은 저녁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는 사람입니다. “어린 새가 날아가는 걸 보”는 사람이고, “검은 나무가 무성해지는 걸 지켜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 버렸다고 해도, “밥을 먹어야지”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소설가가 아닌 시인 한강의 시어를 만나고 싶은 분께 이 책을 권합니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수상작이자 한강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입니다. 「소년이 온다」는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책입니다. 「채식주의자」로 부커상을 탄 이후 국제적으로도 국내에서도 무척 주목받으며 한 때 「채식주의자」 열풍이 불긴 했지만, 그 전에 이미 쓰여진 책이지요.

 

다들 아시다시피 이 소설의 소재는 1980년에 광주에서 일어난 5.18 민주화 운동입니다. 소설에서는 신군부의 독재 정권에 저항했던 사람들이 살아남아서, 혹은 죽어서 이야기를 전합니다.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지키기 위해 애쓰는 개인들이 등장하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비극’이라고 뭉뚱그리면 마치 역사책 속의 사건을 보듯 거리를 두게 되는 반면, 소설 속에서 한 명 한 명의 화자가 ‘나’의 이야기를 하고, ‘너’의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적절하게 거리를 두려고 애쓰면서도 상황속에 빠져들어 공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누구든 이 책을 붙잡을 때는 약간의 각오가 필요합니다. ‘어린 새’ 같은 영혼들이 스러진 자리에서 ‘눈을 부릅뜨고’ 도망치지 않을 각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에 마음이 무너져내리더라도, 고통스러워서 책을 덮고 싶더라도 끝까지 소년의 말에 귀를 기울일 각오, 그래서 무시하고 싶었던 현실을 담담하게 직시할 각오가 필요합니다. 그들이 어쩌면 ‘너’가 아니라 ‘나’였을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그게 이상한 이야기라고 생각되지 않아”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이 책은 이왕이면 「소년이 온다」를 읽은 후에 보면 작가를 이해하고, 작가가 천착하는 주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두 작품 모두 공권력이 저지른 무자비한 폭력 때문에 개인과 공동체가 겪어야 했던 깊은 상실감과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습니다. 「소년이 온다」는 5.18 민주화 운동의 아픔에 대해,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이 남긴 고통에 대해서 섬세하게 다루고 있지요. 「소년이 온다」는 한 사건에 대해 여러 화자의 시선이 병렬적으로 나열되는 구성입니다.

 

목차를 보면 ‘어린 새’, ‘검은 숨’, ‘밤의 눈동자’ 같은 챕터 하나마다 한 명의 화자가 등장해 자신이 겪은 5.18을 이야기합니다. 새의 이미지와 검고 어두운 이미지, 밤의 이미지 등이 일관되게 나타나지요. 반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 명의 주인공 ‘경하’가 등장해 1부와 2부에 걸쳐 친구 ‘인선’과 인선의 어머니 ‘정심’의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1부는 ‘새’라는 제목으로 시작합니다. 주인공 경하는 한강 작가 자신을 대변하는 인물인 듯 5.18에 대한 소설을 막 끝낸 작가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친구인 인선의 고통을, 인선 엄마의 고통을 마주하게 됩니다. 검은 나무와 밀물의 이미지에서 시작해서, 작고 연약한 ‘새’를 찾아가는 여정이 펼쳐지지요. 2부는 ‘밤’입니다. 4.3사건은 제주도민 3만여 명이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했던, 중산간마을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던 너무나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지는 현실이지만, 실제로 일어났던 사실입니다. 작가는 굉장히 비현실적인 시간과 공간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여 현실을 마주하게 만듭니다. 그 밤에 연약한 촛불은 새의 그림자를 더할 나위 없이 크게 그려냅니다. 그렇게 3부는 ‘불꽃’으로 이어집니다. 촛불은 꺼졌고, 눈으로 만든 벽은 서로를 갈라놓지만, 경하는 다시 한번 부러진 성냥개비에 불을 붙입니다.

 

“몸을 일으켜 일렁이는 초록빛의 불꽃들”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이 책은 2007년에 중편 소설 3편을 모아 출간한 연작소설집입니다. 첫 번째 편이 <채식주의자>, 두 번째 편이 <몽고반점>, 세 번째 편이 <나무 불꽃>이에요. 이 3개의 연작이 모여 「채식주의자」라는 소설 전체를 만듭니다. 이 책으로 한강은 한국인 최초로 부커상을 수상했지요. 한강 작가의 책 중에서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책이라고도 하고, 가장 읽기 힘든 책이라고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라고도 합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채식주의자>는 말 그대로 채식주의자가 된 영혜의 이야기로,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돼요. 평범하게 살아가던 영혜가 어느 날 갑자기 육식을 거부하고, 육식으로 대변되는 폭력성에 저항하면서 점점 말라갑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화자인 영혜의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은 영혜에게 고기를 먹으라며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굉장히 자연스러운) 폭력을 휘두르지요.

 

<채식주의자> 연작에서는 끊임없이 육식과 채식, 동물성과 식물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규범과 개인의 욕망, 순응과 저항, 이런 두 항목들 사이의 갈등이 펼쳐집니다. 모순이 발생하는 지점과 복잡한 갈등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양면성, 예술의 양면성, 폭력의 양면성에 대해 질문을 던져요. 그런데 책을 읽으면 어느 한 쪽의 편을 들 수가 없습니다. 식물성을 대변하는 영혜를 이해하려고 무척 노력을 해야 하는 상황, 폭력적인 언행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영혜의 주변인들도 이해가 되는 상황 자체가 독자에게 무척이나 불편함을 줍니다. 양쪽을 이해하려 들면 자신의 양면성을 들여다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거든요. 이 책에서도 꿈, 새, 피, 나무, 숲 같은 이미지들이 소설의 분위기와 주제와 작가의 의도를 미루어 짐작하게 합니다.

「지대넓얕」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채사장은 ‘불편한 책’을 읽어야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지요. 아마 「채식주의자」가 그런 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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