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일상다반사

[글레노리 노란 우체통] SOS

by 앰코인스토리.. 2022. 9. 23.

사진출처 : freepik.com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쥐를 본 적이 있다. 젊은 시절 친구 집 화장실 하얀 변기 속이었다. 엉겁결에 맞닥뜨린 일이라 난감해서 바라보다 그냥 돌아 나왔다. 그 이후로 내가 무슨 일로 허둥댈 때마다 그때가 생각나곤 했는데 오늘 공항에서 그 순간을 또 만났다.

한국으로 출국 한 시간 반을 남겨 두고 시드니 공항 데스크에서 출국 거부를 받았다. 아무리 발을 동동 굴려 봐도 소용없는 일, 한시라도 빨리 노트북을 펼쳐놓고 잘못된 서류를 다시 작성하는 방법밖에 별수가 없었다. <K-ETA> 한국 무사증 입국 신청서가 거부당한 건 숫자 하나를 오기(誤記)한 탓이다. 동행한 남편 생일 끝자리가 4인데 14라고 써넣은 것이다. 여권 만기 날짜가 14여서 나도 모르게 같은 숫자로 눌렀던 모양이다.

눈과 손이 오작동을 한 셈이다. 급할수록 돌아갈 게 아니라 한 번 더 들여다봤어야 했다. 이명이 깊숙이 울리면서 공항 대합실이 갑자기 진공상태로 느껴졌다. 물에 빠져 조난당한 기분이랄까.

 

- 내가 이 서류 작성해서 승인받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

안 하던 큰소리를 쳤는데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었다. 가방을 열고 노트북을 꺼내 신청서를 급히 다운로드하고 여권 사진과 패스포트를 업로드 받아 숨도 못 쉬고 몇 장의 서류를 서둘러 채워 보냈다. 얼굴을 드니 출국장 데스크 마감이 45분 정도 남았다. 담당 매니저 얼굴은 그저 무심했다.

- 그 시간 안에 승인이 날까요?

- 잘하면요.

시큰둥한 대답이다. 사흘 전으로 돌아가 숫자 하나만 고치면 되는데 매트릭스처럼 가상의 세계도 거울의 능력도 내게는 제로였다.

나처럼 발을 동등 구르는 여성이 바로 옆에 또 한 명 있었다. 그쪽도 데스크에 바싹 붙어 서서 죽을상을 짓고 있었다. 휠체어에 타고 계신 연로한 아버지와 어머니, 나이 드신 친척 두 분까지 함께 한국으로 모셔가야 할 형편인데 그쪽은 여권번호 끝자리 숫자를 잘 못 기재했다고 한다. 30여 분이 지났는데도 허가 승인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온 식구가 침통한 표정이었다.

비행기 티켓만 쥐면 오가던 모국 방문, 이제는 너무 까다로워졌다. 입국허가 신청에서부터 코로나 음성 제출을 위한 예약과 완료 문자에 이르기까지 출발 전부터 벽이 너무 두터웠다.

이번 경우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두어 달 비워둘 집 걱정에 안팎으로 거미줄, 배수구 청소는 물론이고 개와 닭을 이웃에 부탁하며 사료와 간식을 넉넉하게 사다 쟁여 둔 일, 냉장고 싹 비우기와 마감 기일에 마쳐 원고 몇 편을 보내야 했고, 이웃에게 우편물 부탁, 헬스클럽과 유료 티브이 일시 중단 등등.

한 달 전부터 발바닥이 아프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여행 가방 꾸리는 일도 몇 년 만이라 만만찮았다. 대장정이나 떠나는 것처럼 야단법석을 치르고 난 후에야 드디어 공항에 도착했던 것이다.

끝날 줄 모르는 안개 속 팬데믹 상황, 조급과 염려증이 줄기는커녕 갈수록 가중되어만 갔다. 이런 여행이 과연 앞으로 몇 번이나 가능할까, 말은 안 했지만 서로의 얼굴에 피로감이 역력했다. 그래도 집을 나서는 이유는 비행기가 뜰 때 조금이라도 더 다녀보자는 뜻이었다. ‘위드 코로나’로 가자 했지만 시시각각 조여드는 반목과 긴장감은 여전했다.

 

그녀도 나도 얼굴이 점점 흙빛이 되어갔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데 내 건 고사하고 먼저 신청했다는 그녀의 서류조차 감감무소식이었다. 남편은 슬그머니 자리를 떠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아마 출국이 안 될 경우를 대비하는 모양이었다. 데스크 마감이 10여 분 남았다. 내일은 출국 비행기가 없고 그다음 날에 좌석이 남아 출국한다 해도 어렵사리 만들어 둔 동문과의 내일 약속은 이미 틀어지는 것이며 그조차 남은 좌석이 없다면 며칠 후에 떠나기로 했던 미주 단체여행은 엉망진창이 될 게 뻔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그녀가 갑자기 부산해졌다. 여권을 펴놓고 출국 진행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막 승인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녀보다 30분이나 늦게 신청한 우리는 어떡하나, 데스크 마감이 거의 임박했다. 익은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릴 순 없었다. 민망함을 박차고 부딪치기로 했다.

후덕하게 생긴 한국 직원 한 명과 눈빛이 스쳤다. 염치를 무릅쓰고 여권을 내밀었다. 입국 허가는 반드시 떨어질 것이니 제발 한 번만 체크해달라고 부탁했다. 내 울상은 보나 마나 그 생쥐 꼴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알았다며 재부팅 해보더니 고개를 양쪽으로 저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데스크 앞을 떠나지 못했다. 잉크 한 방울이 딱 필요한 순간, 울릴지 모르는 손전화기를 뚫어지게 내려다보았다.

이삼 분 정도 흘렀을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체크해달라고 또 간청을 했다. 안 되면 돌아갈 각오를 했다. 직원은 고맙게도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그동안 소홀했던 하나님을 절박하게 불렀다. 출국 준비로 몸살까지 난 시간들이 어깨를 무겁게 눌러 주저앉을 것 같았으나 그 직원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미 데스크 마감 시간은 넘었다. 지금 뛰어가도 세관 검사대를 지나가야 하니 첩첩산중이었다. 그때 그녀 얼굴 표정이 바꿨다.

- 아 지금 허가 떨어졌어요!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아마도 잉크 방울이었을 것이다. 순간 남편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편도 실감이 나지 않은지 손등이 떨렸다. 우리는 가방을 급히 부치고 그녀가 건네주는 보딩 티켓을 쥐고는 허겁지겁 뛰었다. 그 직원조차 빨리 가라며 등을 밀듯이 손을 휘저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캐리어를 하나씩 끌고 굴렀다.

세관 검사대를 통과하며 흐트러진 짐을 마구 집어넣고 돌아서는데 누군가 큰 소리로 “모발! 모발!” 외치는 소리에 혹시 뒤돌아보니 내 보라색 핸드폰이 검색대 네모난 하얀 사각 통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던 귀에 박힌 말, 여전히 내 귀는 빈껍데기나 다름없었다.

참새방앗간이었던 면세점 앞을 총알같이 지나 35번 게이트 쪽으로 뛰었다. 보딩 게이트에는 승객 한 명 보이지 않았고 비행기를 붙잡고 있는 듯 항공사 직원 두 명이 우리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제야 다리가 풀리고 갈증이 몰려왔다. 남편이 발 빠르게 생수를 사다 주었다. 한 병을 거의 다 마시고 에어버스에 입성을 했다. 안전벨트를 매고 동체가 날아오르니 그제야 한숨이 새어 나왔다.

바닥을 치고 올라온 기분이 이런 것일까. 눈썹 끝만큼 남은 시간 값이 천만금만 같았다. 사람 일이란 게 그렇게 꼼꼼히 준비해도 구멍이 생기기 마련인가 보다. 오늘 일이 틀어졌을 경우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큰 가방 세 개와 캐리어 두 개를 질질 끌고 침울하게 집으로 돌아가며 서로를 원망했을까 아니면

- 괜찮아.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갔다가 다시 오자.

라며 툭툭 털고 격려를 주고받았을까.

그 어느 쪽이든 드라마틱한 장면임이 틀림없다. 앞으로 두어 달의 여정 가운데 국경을 여러 번 넘나들어야 하는데, 물에 빠져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했으니 다시 한번 그 정신을 챙겨야 했다. 나는 점점 믿을 수 없는 나와 오리무중인 시절을 양손에 쥐고 젖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