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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라벨을 떼다

by 에디터's 2022. 6. 28.

사진출처: 프리픽

저녁을 다 먹고 나서 TV를 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계속 나는 바람에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페트병 찌그러지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궁금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주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어머니가 무언가를 하고 계신 모양이었다. “무얼 하시나요?” 묻자 어머니는 몇 초간 뜸을 들인 후 대답을 해주셨다. “라벨을 떼고 있단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어제 먹었던 1.5l짜리 생수병이었다. 생수병이 라벨을 떼고 나니 투명한 페트병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어머니께서 라벨을 꼼꼼하게 뗀 덕에 페트병이 말끔해 보였다. 이윽고 페트병을 발로 밟았다. 몰라보게 부피가 줄어들었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베란다로 가셨다. 나도 어머니가 가시는 곳으로 몸을 움직였다. 베란다 한쪽에 커다란 봉투에 페트병을 넣으셨다. 어머니를 따라가 봉투 안을 보았다. 페트병들이 수북하게 들어가 있었다. 가끔 들려오는 소리의 원인이 페트병이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하셨어요?” “얼마 안 되었어. TV를 보게 되면서 실천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어.”라고 말씀해 주셨다.
어머니가 유익한 프로그램을 찾아보시는 편인데,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환경을 지키는 박사님의 방송에 채널을 보게 되었다고 하신다. 그리고 그 박사님이 지구를 지키는 손쉬운 실천은 페트병 라벨 떼는 것이라 말에, 그것부터 실천하게 되었다고 한다. 솔직히 페트병을 따로 모으고 재활용할 수 있는 물품의 목록은 이런 것들이라는 말을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그래서 분리수거는 최대한 열심히 하려고 나 자신도 노력해 왔다. 병은 병대로, 페트병을 페트병 대로, 신문이나 박스류는 모아서 버리는 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굳이 페트병의 라벨까지 떼고 버릴 필요가 있을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페트병의 라벨을 떼는 게 중요할까 궁금해졌다.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페트병 분리수거’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 감은 오지 않았다. 별 상관이 없겠지 생각하며 레벨 떼는 수고스러움을 낮게 평가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의외였다. 페트병의 올바른 배출 방법은, 라벨을 떼고 페트병 안의 내용물을 깨끗하게 비운 후 투명 페트병만을 모아 버려야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다소 의외였다. 페트병을 한데 모아 녹여 재처리 과정을 거친 후 새로운 플라스틱 형태로 재탄생한다고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색깔이 있는 것들은 제거하는 것이 재처리 과정을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되도록 뚜껑도 분리해 주어야 한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맞는 얘기인데 그동안 전혀 고민해 보지는 않았던 부분이다. “어머니가 참 좋은 일을 하고 계신 거였네요.” 어머니에게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셨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 환경을 사랑하고 지구를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고 있었다. 남보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그에 따르는 행동도 해 왔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 없는 행동은 안 하느니만도 못하게 된다는 교훈을 깨닫게 된다. 올바른 실천이 아니라면 원래 의미가 퇴색될 수 있음도 알게 되었다. 지구를 사랑으로 제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올바른 지식을 습득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해본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