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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행복복지센터 벤치

by 에디터's 2021. 12. 17.

사진출처: 크라우드픽

거리두기가 한참일 때 친구를 다시 만났다. 거의 10년 만에 우연히 만난 것이다. 그리 친하지는 않았던 친구라 학창 시절에는 말 한 번 제대로 붙일 수 없어 그 친구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은 없었다. 많은 것을 얘기하고 싶은 눈치라 몇 번 말을 받아주다 보니 만나서 얘기도 하게 되었다. 일단은 지척에 두고 있는 상태라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엄중한 상황이었던 때라, 어떤 공간에 들어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얘기를 들어 보면 11월 초에 시험이 있다고 해서 자주 연락하는 것도 다소 부담스러웠다.
10월 중순쯤, 친구를 찾아갔을 때 친구는 대화하기 좋은 곳을 찾아냈다며 자신을 따라오라 했다. 친구가 이끄는 대로 가보니 행복복지센터 앞 인조대리석 벤치였다. 평일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주말에는 쥐 죽은 듯 조용한 곳이었다. 늦은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면서 코로나 걱정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친구의 말대로 대화 나누기에는 안성맞춤의 공간이었다.
그렇게 그 친구가 찾아낸 벤치에서 주말 늦은 오후에는 그 친구와 나는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남자끼리 만나서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 싶었는데 한 주 지나 찾아가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 친구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주로 얘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젊은 세대의 가장 큰 고민이 일자리인 것처럼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면 지금 하는 일에 위협을 느껴야 하는 것도 매한가지다.
요즈음 자격증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며 강의는 어떻게 진행되며 어떤 시험을 보는지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얘기했다. 듣고만 있어도 현재 얼마나 절실한지 가슴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마다 친구와 대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나의 인생과 미래를 고민해 보곤 했다. 지난주에도 친구는 벤치에 나와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처럼 먼저 나와 있는 것이었다.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11월 하순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보니 대리석 벤치는 많이 차가웠다. 그래서 서서 얘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뭐 깔고 앉을 수 있는 것을 찾아보겠다는 친구였지만 괜한 수고스러움이 될 거 같아 그냥 서 있기로 했다.
친구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오토바이 두 번의 사고 얘기를 조심스럽게 풀어냈다. 친구에게도 이런 아픔이 있었는지 그때서야 알 수 있었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친구는 참 말이 없고 자신의 얘기를 안 해주어서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웠는데, 그때는 어려서 그런 것을 얘기해 줄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 역시도 친한 친구일지라도 가족 얘기를 다 털어놓고 얘기하지는 못했었다. 어린 시절, 그 친구가 과묵하고 재미없다고 단정 지었던 게 다소 미안해졌다.
이야기를 다 끝내고 작별의 인사를 돌아서려는 순간, 친구는 까만 봉지에서 유명 제과점에 산 듯한 빵을 하나 꺼냈다. “오늘 네게 주려고 산 거야.” 하면서 내밀었다. 참 먹음직한 빵이었다. 아직 따스한 온기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벤치로 나오면서 사 온 듯싶었다. “고맙다. 뭐 이런 거까지.” “내가 더 고맙지. 주말마다 시간을 내줘서 고마워.” 진심이 느껴지는 따뜻한 말이었다. 잠시 나와 1시간여 친구 얘기를 들어주는 건데 친구는 많이 고마워하는 눈치였다. “코로나가 끝나면 근사한 밥 한 끼 살게.” 친구의 고마움에 대한 답을 주었다.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고 있다. 삶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거창하고 멋진 것을 쫓아야 하는 세상 속에서 작은 것을 취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이지만, 때론 작은 것에서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