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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동태찌개

by 앰코인스토리 - 2019. 2. 26.

사진출처 : gongu.copyright.or.kr


“오늘 저녁은 동태찌개다.” 엄마는 저녁 메뉴를 일찍 알려주셨다. ‘아! 동태찌개!’ 동태라는 말만 들어도 추운 겨울에는 설렌다. 드디어 저녁 시간, 엄마표 동태찌개가 식탁 중앙에 놓였다. 코끝이 찡하고 손이 얼얼한 추운 겨울이 와야 동태찌개의 제맛이 우러나온다고 했던 그 옛날 엄마의 얘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잘 익은 김장김치와 시원한 무, 그리고 동태가 이루는 그 하모니를. 맛부터 확인하고 싶었다. 국물 한 수저 떠서 입안에 넣는 순간 온몸이 따스해져 오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이 맛이네요. 엄마 실력은 여전히 살아있네요.”
그렇다. 10년 전, 아니 20년 전 겨울에 한 냄비 가득 끓여 주셨던 그 동태찌개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다른 반찬 필요 없이 동태찌개로만 밥 한 공기를 비웠다. 국물까지 싹싹 비운 모습을 보면서 엄마 역시도 기분이 좋으셨는지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으셨다.
그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명태가 한참 잘 잡히던 때가 있었다. 추운 바다를 좋아하는 녀석이라 겨울이 되면 사람들의 사랑을 참 많이 받았던 생선이었다. 고등어와 함께 서민의 대표 생선이었으며, 얼리고 말려서 다양한 요리로 변신의 변신을 거듭하기 했다. 명태는 당연히 싸고 맛있고 국산일 거라는 믿음 또한 상당히 강했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추운 겨울에도 명태 보기 힘들어졌고, 국산 생태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될 지경이 되었다. 다시 국산 명태를 만들어 보자며 인공 산란에 힘을 쏟아 어린 치어를 넓은 동해에 풀어주는 광경을 뉴스로 본 적도 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목장을 하는 탓에 마을과 떨어져 외딴곳에 터를 잡아야 했다. 우유를 실컷 먹을 수는 있었고 우유 회사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나눠주는 마가린과 버터로 아침, 점심, 저녁을 자주 해결하던 때였다. 친구들이 우스갯소리로 혀를 굴려야 하는 영어는 잘할 수 있겠다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버터와 마가린이 질릴 때쯤, 칼칼한 그 무언가가 생각날 때마다 엄마는 알이 꽉 찬 생태를 사 오셨다. 잘 익은 김장김치 하나만을 넣고 끓여도 생태는 참 간이 잘 베었다. 굵은 가시를 걷어내고 나면 쫀득쫀득한 속살이 나왔고, 좀 더 맛있게 먹어 보자는 생각에 기다란 배춧잎에 싸서 진하게 우러난 국물에 적셔 밥을 얹어 먹기도 했다. 잃었던 입맛도 되돌아올 정도였다. 밥만 먹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으셨던 아버지는 금세 소주 한 병을 꺼내 생태찌개를 술안주로 활용하셨다. 생태가 조금 비싸다 싶으면 동태로 바꿔가면서 추운 겨울 한 철을 지냈다.
너무도 맛있게 먹었던 동태가 생각나 장을 보러 나온 김에 사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봤더니 꽤 높은 가격표를 붙이고 있었다. 천 원짜리 한두 장이면 한 봉지 가득했던 동태를 생각했던 그때가 꽤 오래전이었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되었다. 좀 비싸긴 해도 큰마음 먹고 집어 들었다. 동태가 다시 서민 생선으로 부활하는 바람을 안고. 아버지가 그 옛날 동태찌개로 소주 한 잔 한 잔 기울이던 그 추억을, 어른이 된 나도 한번 느껴 보고 싶어서였다.
“엄마, 동태 두 마리 사갑니다. 준비 좀 해주세요. 바로 갑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