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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이야기] 전기소설 傳記小説

by 앰코인스토리 - 2018. 12. 11.

이번 호에는 위진남북조의 지괴소설에서 발전한 당(唐)의 전기소설(傳奇小說)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1. 전기소설이란?

 

전기(傳奇)란 말은 문자 그대로 ‘기이한 사람이나 사건을 전한다는 말’로써, 당대(618~907)에 흥행하였기에 일반적으로 당 전기라고 부릅니다. 당 전기소설은 지괴 소설의 기초 위에서 발전한 것인데요, 전기가 지괴와 닮은 것은 기이한 것을 수집하여 역시 문장을 기이하게 꾸민다는 점에서는 비슷했지만, 지괴와 같이 현실을 벗어나거나 황당하고 사리에 어긋나는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부연하자면, 지괴는 의식적 문예창작이라고 보기에는 거리가 있고, 전기는 의식적으로 소설을 창작하였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진정한 의미의 문언 단편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대표작으로 「장한가전(長恨歌傳)」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 장한가전 (長恨歌傳, 오랜 사무침의 노래)

 

소설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줄곧 태평을 구가하던 당 개원(開元) 시기, 현종(玄宗)은 가무와 여색을 탐닉하며 특히 양귀비를 지극히 총애하였습니다. 양귀비의 숙부와 형제들까지 모두 귀족이 되었고, 자매들 역시 귀부인에 봉해져 그들의 부귀는 실로 고관대작 못지않았습니다. 그러나 당말에 안사(安史)의 난(755~763, 안녹산과 사사명이 일으킨 난)이 일어나 양귀비를 처벌하겠다는 기치를 내세우는 시국에 이르렀습니다. 현종은 당황하여 촉(蜀)으로 도망하였으나 따르는 병사가 없고 양씨 남매를 처형할 것을 요구하게 됩니다.

 

▲ 양귀비 초상화

사진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


현종은 어쩔 수 없이 군사들의 요구대로 양귀비를 죽이게 되는데, 반란이 평정되어 수도로 돌아온 후로 오로지 양귀비만을 그리워하였습니다. 이에 촉에서 온 도사에게 어명을 내려 양귀비의 영혼을 찾게 하였는데, 마침내 봉래산의 최고봉인 선산(仙山)에서 옥비태진원(玉妃太眞院)에 거하고 있는 양귀비를 찾아내게 됩니다. 임무를 띠고 갔던 도사는 돌아와 양귀비의 다음 말을 현종에게 전해줍니다.
“옛날 천보 10년, 모시고 여산궁(驪山宮)으로 피서를 갔을 때 마침 추칠월 견우직녀가 상봉하는 날 밤이었습니다. 이날 밤중에 황제를 모시고 있었는데, 황제는 내 어깨에 의지하여 서서 하늘을 우러르며 견우직녀의 일에 감격해 하면서, 가만히 맹세하기를 대대로 부부가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를 전해 들은 현종은 더욱 상심에 빠져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전기소설은 당나라 진홍(陳鴻, 생몰미상)이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장편 서사시인 《장한가(長恨歌)》를 토대로 역사적 사실과 민간 전설을 근간으로 하여 쓴 것입니다. 작가는 현종이 가무와 여색에만 탐닉한 채 간신을 등용한 것에 대해서는 은근한 비판을 하고 있지만, 현종이 아들의 여자인 양귀비를 뺏어온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비록 결말 부분에 경국지색의 내용이 있지만,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은연중에 미화시킨 것은 작가 스스로가 생각하고 있던 이상적 사랑에 대한 귀결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일종의 틀에 박히지 않은 사랑의 이야기는 극히 일반적인 남녀 간의 사랑에 비해 곡절이 많고 이야깃거리가 되어 문인들의 공감을 이끌어 냄으로써 소설이나 시로 승화되기에 오히려 적합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상적인 사랑이란 어떻게 보면 실행되기 어렵고 현실의 조건에서는 많은 아픔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에 부합하는 내용이 있는데, 풍연사(馮延己, 904~960)의 사(詞)인 《작답지(鵲踏枝)》 내용 일부를 보면, ‘잊으려 해도 잊기 어려운 것으로서 오히려 그 고통에 수척해짐도 초연하겠다’고 표현합니다.

 

誰道閑情拋棄久 누가 쓸데없는 마음 세월 지나면 잊힌다 했던가
每到春來, 惆悵還依舊 매번 봄이 오면 여전히 슬퍼지는 것을
日日花前常病酒 하루하루 꽃을 보면 술병이 도지는데
不辭鏡裏朱顏瘦 거울 속의 붉던 얼굴 수척해진들 어떠하리

 

당시의 역사적 사실이면서 당말의 그 부패한 사회상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감내해야 했을 일반 민중의 삶이란 매우 힘에 겨웠을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이런 배경이 내재해 있다 하더라도 단지 소설 내용으로 보면 현종이 그렇게 총애하던 양귀비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했던 사실과 그 결과 스스로 느꼈을 개인적 아픔은 그 어떤 것으로도 형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는 마치 패왕별희(霸王別姬), 즉 해하(垓下)의 마지막 결투를 앞두고 우희(虞姬) 앞에서 해하가(垓下歌)를 불렀을 항우(項羽)의 심정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욱(李煜, 937~978)이 지은 《우미인(虞美人)》에는 그런 회한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春花秋月何時了 봄꽃과 가을 달은 언제 지는가

往事知多少 지난 일은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小樓昨夜又東風 작은 누대엔 간밤에 또 봄바람 불더니
故國不堪回首, 月明中 밝은 달 아래 고국을 회상하지 못하겠네
雕欄玉砌應猶在 조각난 난간 옥 섬돌 여전하겠지
只是朱顏改 다만 붉게 낯빛만 변하였구나
問君能有幾多愁 그대에게 묻노니 얼마나 많은 수심을 가졌는지
恰似一江春水向東流 온 강의 봄 물결이 동쪽으로 흐르는 것 같을 것인데

 


이상으로 2018년 한 해의 [중국어 이야기]를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뒤돌아보건대, 최초 중국 ‘소설’을 모티브로 해서, 소설의 어원을 시작으로 신화, 지괴, 전기까지 다소 거칠게 소개해 드렸습니다. 지면의 한계도 있겠지만, 필자의 개인적 능력 한계로 말미암아 매끄럽지 않은 전개와 중간중간 다분히 사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개입되었습니다. 특히 글을 씀에 있어 여러 가지 객관적 자료를 바탕을 쓰고자 하였는데, 이는 어쩌면 그 내용의 충실함을 떠나 너무 딱딱하여 흥미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만들어 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보에 연재하는 중국어 이야기의 주제를 중국 소설로 삼을 이유는, 다름 아닌 근대 소설 속에 중국 작가들이 한국인에 대하여 어떻게 그들의 소설 속에 형상화하였는지를 소개하고자 하였는데, 소설이라는 원론적 개념부터 시작하다 보니 거기까지는 채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더욱이 이렇다 보니 원래 현대 중국어 학습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 취지와는 거리가 있고 아직 시기적으로 당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다만 소설이라는 개념이 어디서 왔는지 일종의 상식적 차원에서 소소하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WRITTEN BY 송희건

“君子以文會友, 以友輔仁.”
“군자는 배움으로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로써 인의를 다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