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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스카이 콩콩

by 앰코인스토리 - 2015. 12. 28.


손주가 도착할 때, 의례적으로 나와 아내가 번갈아 끌어안고서 엉덩이를 툭툭 두들겨 주면–무심코 차별이라도 하게 되면 바로 강력한 반응이 와서 공평하게 대하려고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살포시 안겨오는데, 이번에는 안기지도 않고 거실과 방 쪽으로 눈만 두리번거린다.

“손자가 이상하네. 왜 그러는 거야?”

“선물이 있다고 했는데 어디에 있는 거지?”

손녀도 덩달아서 혀 짧은 소리로 “엄마가 기타 사준다고 했는데….”

이번 달 하순에 손녀의 세 번째 돌이 들어있어 손자에게는 ‘스카이 콩콩’을 손녀선물로는 ‘노래하는 기타’를 준비했는데, 아들이 그새를 못 참고 알려준 모양이다. 작은 방을 손짓하면서 일러주었다.

“저쪽에서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손자가 앞서고 손녀가 뒤따라 들어가더니 투덜대며 나오기에 다시 그쪽으로 밀었더니 덩치 큰 포장물을 질질 끌고 나와서는 풀어헤치기에 바쁘다. 선물을 받을 때마다 듣는 소리지만 “내가 꼭 가지고 싶었는데.” 예쁜 말솜씨가 귀엽고도 고맙다. 이 맛에 또 새로운 선물을 준비하는 게 노인의 즐거움인가 보다.


손녀는 기타를 어깨에 걸치더니 침대로 올라가서는 양손을 뻗은 채로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우고는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고 난린데, 자기 것은 아파트 실내에서는 탈 수 없다는 것을 안 손자는 금방 울상이더니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다.

“동생만 좋은 것 사주고. 할아버지 정말 나빠.”

<곰 세 마리> 노래가 나오니 더욱 신이 난 손녀는 방과 거실을 뛰어다니고 손자가 뒤따르면서 오누이 간에 ‘6.25는 전쟁도 아닌 쟁탈전’이 시작되었다. 나는 즐거움을 더해주겠다는 아집으로 ‘엘비스 프레슬리’를 흉내 낸다고 한쪽다리를 소파에 걸치고 머리를 끄덕이면서 기타를 쳐 보이지만, 누구도 관심을 가지질 않은 이방인이 되었다. 그런 해프닝도 한 시간도 못되어 손녀가 할머니에게 안겨서 “나는 손으로 살짝 밀었는데, 오빠는 발로 세게 차서 아파.”라며 울음보를 터트리면서 끝이 났다.


나는 오래된 사진첩을 펼쳐서 손자에게 아빠와 고모가 ‘스카이 콩콩’을타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며 남매가 사이좋게 노는 방법을 설명하려는 데, “할아버지, 사진이 작아서 잘 안 보이잖아. 컴퓨터에서 큰 사진 보여줘.”라면서 볼 생각도 하질 않는다. 지난번 수강한 인문학 강좌에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동시대에 살지만 이 두 사람은 절대로 같은 생각과 행동을 가진 인간이 아니다. 결혼을 앞둔 손자는 월세에 살아도 자가용이 있어야 하지만, 할아버지는 무엇보다 집이 있느냐가 일 순위다. 화목하게 지내려면 서로가 다름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는 시대다.”라는 말을 되새김하게 하는 요즘이다.


어느새 손자는 신발을 신고 점퍼까지 걸치고는 현관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다. 놀이터 마당에서 ‘스카이 콩콩’에 발을 올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뒤로 쾅하고 넘어졌으나 스펀지가 깔려있어서 천만다행이다. 아내와 내가 양어깨를 잡아 주고서야 10번, 20~50번까지 억지로 이어갔다. 손녀는 미끄럼틀을 역으로 오르려고 용을 써는 게 안타까워 할머니가 엉덩이를 받쳐주니 그것이 싫다고 승강이다. 여러 차례 반복된 타기에 목이 마른 손주는 찡그린 얼굴에다 불평이 가득하였지만 내일 아빠가 도와주기로 약속하면서 끝이 났다.

아무튼, 다음번 만날 때는 발로는 땅을 치고 머리는 하늘로 솟구치는 ‘스카이 콩콩’ 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글 / 사외독자 이종철 님